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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악법에 대해 - 전종휘/ 한겨레 기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53
조회
362

전종휘/ 한겨레 기자


“두발의 자유를 허하라, 복장 단속을 하지 말라, 함부로 때리지 말라.”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요구들은 1987년 하반기 노동자 대투쟁 때 울산 현대중공업 등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내 건 것이다. 당시 회사 간부들이 작업장 입구에 `바리깡'을 들고 서 있다가 머리가 긴 노동자가 지나가면 붙잡고 그들의 두피에 직접 고속도로를 냈다고 한다. 생산직 노동자들이 옷도 자유롭게 입을 수 없었고, 툭하면 간부들에게 작업장에서 얻어맞았다. 그 때는 6월 항쟁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린 군사독재 정권이 직선제 개헌 약속을 한 직후였는데, 노동자들이 처한 인권 상황은 이처럼 말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거름 삼아, 2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진보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시민들의 정치사회적 자유는 확대됐다. 국가권력이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던 통제도 많이 약화됐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꽃은 싱그러움을 더하고 키도 많이 큰 듯하다. 그 꽃은 법제도와, 일반의 상식 등을 텃밭으로 삼고 자라왔다.

하지만 그 밭에는 독버섯도 여전하다. 분명, 사회의 발전 방향을 보았을 때 뿌리가 뽑혔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꽃 옆에 기생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되레, 그 꽃이 꽃이 아니지 않을까 싶게 의심하게 만드는 힘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 독버섯의 이름은 무엇인가? 바로 국가보안법과 집회및시위에관한 법률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행동하는지를 법의 이름으로 판단하고 처벌하는 게 바로 보안법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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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보안법 사건 일지
그림 출처 - 한겨레



대한민국 군대와 관련해 이미 인터넷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지식을 공개해도 처벌하는 게 보안법이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식이다.

그런데 6월 항쟁 당시 부산지역 상임집행위원이던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2003년 이후 보안법으로 구속된 이의 숫자만 이미 140여명에 달한다. 한나라당의 탄핵 뒤 이어진 여대야소 국면에서도 이 ‘리바이어던’의 목숨을 끊지 않은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또 다시 평화나 개혁, 대통합처럼 ‘동지는 간 데 없는데 나부끼는 깃발’을 내걸고 재집권을 도모하는 모습은 차라리 코미디다.

때로 미국 추종적인 듯 보이는 공무원들이 유엔과 미국의 철폐 권고를 무시하고 “그럼 간첩은 어떻게 잡느냐”며 이 법을 존속하기 위한 작태를 보이는 것도 심히 불편하게만 다가온다. 보안법의 든 자리가 형법의 난 자리보다 훨씬 더 커보일테다.

집시법은 또 어떤가. 6월 항쟁 때도 웬만한 집회는 대부분 불법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욕망이 분출되는 매일매일의 현장들이 법적으로는 모두 금지됐다. 심지어 그 해 7월 9일 1백만 명이 모였다는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마저도 형식적으로는 불법 집회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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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9일 명동에서 열린 '집시법 불복종 행동' 에 참여한 인권단체 회원들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부정직한 국가 권력이 반대의 목소리를 가장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집시법이다. 법 집행의 자의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보안법이나 집시법이나 오십보백보다. 시민의 헌법적 권리와 자유의 확보보다는 행정력 집행의 편의성에 관심이 더 많은 경찰에게 집시법은 참으로 편리한 도구다.

이 법도 현 정권 들어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졌다거나 개정을 추진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정권이 생존을 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자신의 생존권이 걸린 이들이 반대시위를 할 때, 이 법은 정권의 뜻을 지키고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가장 앞장섰다.

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게 보안법과 집시법이다. 민주주의의 꽃이 봉오리를 맺으려는 데 주먹만한 우박을 뿌리는 악법이 바로 이 법이다.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목숨을 부지하는 이 법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들의 숨통을 끊을 자는 누구인가. 대선이 이제 6달도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민주 시민이거나 양식이 있는 국민이거나 양심 있는 시민인 우리들이 고민을 해야 할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