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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프지만 기억해야만 하겠다.” - 강유미/ 수색초등학교 교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49
조회
397


“너무나 아프지만 기억해야만 하겠다.”
- 영화 ‘거북이도 난다’를 보고


강유미/ 수색초등학교 교사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의 가장 큰 매력은 ‘우화성’에 있다. 우화는 그 자체로 현실을 의미하지 않지만 우화의 비틀기와 풍자성은 현실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다. 아이나 동물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리얼하고 예리한 ‘촌철살인’이 된다.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사회에 적당히 길들여지고, 적당히 악해진 어른 세계는 순수한 동심의 시선에 더욱 더 굴절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워즈 워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영혼은 그 사회의 시금석과도 같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죽음은 신의 죽음과 같다.” 사회와 어른에게 있어서 아이가 갖는 상징성이란 바로 ‘희망’이기 때문이다.

어떤 최악의 고난의 상황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는 자라주길 바라는 것이다. 연약하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으로.

영화 ‘거북이도 난다’라는 제목은 그래서 더욱 역설적이다. 걷는 것조차 느릿하고 위태로운 거북이가 날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날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영화제목이 암시하듯 아이들이 머무는 현실은 영화 내내 보여지는 진흙탕처럼 질퍽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다.

소수민족으로 핍박받아온 역사를 고스란히 견뎌온 쿠르디스탄 지역의 쿠르드계 감독인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본 경험 없이 그저 영화가 좋아서 이란의 유명한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조감독을 자원한다.

그러나 그는 키아로스타미처럼 사색적이고 고요한 성찰이 담긴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태생적으로 키아로스타미와 달랐다. 그의 카메라는 아름다운 올리브 나무숲과 황홀하고 풍요로운 대자연보다는 비행기의 폭음과 탱크 잔해, 지뢰나 탄피 등을 놀이기구와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아가는 자신의 민족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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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화 '거북이도 난다'


 

그의 영상 속의 배경은 신비롭게 눈 덮인 산야와 평화로이 날아오르는 새떼처럼 아름답지만 그 배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의 풍경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쿠르드족은 권력의 정점을 쥐고 있던 후세인을 위시한 주류 민족으로부터 핍박받던 소수민족으로서 독립을 위해 미국 정부를 지원했다가 이라크 군인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물론 쿠르드족 지도자들의 선택에 대한 평가는 분분했을 테지만 대다수의 쿠르드족의 생존과 독립의 문제는 모든 대의를 넘어서고도 남았을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도 쫓겨나 난민으로 더럽고 초라한 천막 안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쿠르드족의 역사는 그야말로 광야에 흩날리는 질기디 질긴 야생초와 다름이 없다.

그들이 태어나 살아가는 곳은 다름 아닌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국경지역. 서로 넘어오기만 하면 총을 갈겨대고 강대국들은 앞을 다투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지뢰를 묻어 놓았지만 이곳을 떠나 달리 살아갈 방법도 여유도 없는 쿠르드족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지뢰를 캐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며 가장 좋은 교육과 환경 속에서 자랄 권리가 있지만 쿠르드족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정치 싸움과 전쟁 게임에 가장 여린 가슴 속에 씻어지지 않을 상처를 입는다. 지뢰 때문에 두 팔을 잃은 헹고, 이라크 군인들에게 윤간 당한 아그린, 그 악몽의 씨앗으로 태어났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아기 리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어른 같은 약삭빠름과 흥정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위성과 같은 아이들을 본다는 것은 영화 감상이 아닌 일종의 천형이나 고문을 감내해야 할 만큼의 고통을 가슴 가득 느끼게 된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독재자인 후세인이 땅도, 식량도, 심지어 하늘까지 빼앗아 버렸다고 탄식하지만 구원군으로 여겨졌던 미국에 대한 비판도 드러낸다. 위성은 구세주이며 친구처럼 여겼던 바로 그 미국이 묻어 놓은 지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잃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군과 탱크 행렬을 차갑게 외면하고 절뚝이며 걸어가는 위성의 엔딩신은 고바디 감독의 정치적 시선을 드러내 준다. 감독 자신의 말처럼 “나의 카메라는 목숨과도 같은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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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화 '거북이도 난다'


그는 실제로 다리가 없고 팔이 없는 아이들을 배우로 기용하고 탄피가 기괴하게 쌓여있는 곳에서 마치 다큐를 찍듯이 영화를 ‘보여준다.’ 특별한 사건의 창작과 플롯이 없어도 고바디의 카메라는 현실을 고발하고 관객의 머리와 가슴을 내려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영상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드라마 곳곳에 배치된 상징적인 복선들은 이 영화만이 갖는 아우라적 신비감을 더해주며, 일년에 한번만 눈이 온다는 쿠르디스탄 지역의 눈 덮인 산야 위로 아득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비상은 허한 아그린의 눈망울을 더없이 닮아 있다. 가슴을 찢는 듯이 절규하는 여인의 노래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오를 즈음엔 관객이 받는 천형 같은 고문 역시 끝나지만 가슴 속에 찍힌 화인이 주는 고통은 영원히 계속 될 것처럼 먹먹해 온다. 그리고 중얼거리며 되뇌게 된다. “너무나 아프지만 기억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