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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타는 차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안진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5:39
조회
545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차량이 계급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탄 차량이 당신의 신분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집에 이어서 계급을 나타내는 징표가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고급차량을 보며)당신, 참 잘 사셨군요’와 같은 광고 문구는 ‘인간성’과 ‘진정성’을 대신해 인간에 대한 평가 척도를 차지한 ‘차량’과 ‘집’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하지만 가장 잘 못된!) 광고일 것입니다.

광고만 문제가 아니겠죠.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가 ‘차량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낸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작은 차나 경차’를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작은 차나 경차를 탄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작은 차나 경차를 타고 다니다 겪은 봉변이나 해프닝 등을 이야기 합니다. 접촉사고 났을 시, 큰 차에서 내린 상대방이 ‘차도 안 좋은 게...’라는 말을 했다든지, 사업관계로 사람을 만났는데 작은 차를 탔다는 이유로 비우호적인 대접을 받았다든지, 호텔 같은 곳을 갔더니 차량 주차를 아예 못하게 했다든지... 엄연히 손님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얼마나 ‘반인간적’이고 ‘인간에 대한 무례’한 상황인가요.

어떻게 차량이 계급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차량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차량은 그냥 운송수단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차량을 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차량이 계급이고 신분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작금의 현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된 문화를 개선하고, 예산절감과 에너지 절약, 대기오염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고위공무원들이 오히려 잘못된 문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데 앞장서고, 연비가 가장 낮은 초대형차량을 주로 타고 다니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전용 관용차량은 대부분 에쿠스, 체어맨 류의 초대형차량입니다.

 

고위공직자 전용차량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최고급 차량인 현대자동차 '에쿠스'
사진 출처 - 현대자동차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를 보면 차량이 계급이 돼있는 현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장·차관급 고위공직자들에겐 기사 딸린 전용차량이 지급되고 있는데, 장관급들은 차관급보다 ‘더 큰 차’를 ‘전용차량’으로 배정받아 타고 다닙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는 배기량이 3500CC가 넘고 차값만 5천만 원, 1년 운영비만 1천만 원이 든다는 에쿠스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차량 중에서 가장 연비가 낮은 차량이지요. 또 고위공직자 전용차량의 색깔은 모두 검은 색입니다. 검고 큰 차로 자신의 권위와 신분을 드러내겠다는 것은 매우 반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들은 정말 힘겹게 살아가는 이 때, 자기 돈도 아니고 국민세금으로 자기 신분을 과시하고 계급 서열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자아냅니다.

차관이하의 직원들은 당연히 알아서 차관보다 작은 차를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는 수십 년 동안의 불문율입니다. 고위공직자뿐만 아닙니다. 일반 기업들에서도 직급에 따라 차량 크기가 다 다릅니다. 사장이 제일 큰 차면, 상무·전무들이 다음 크기의 차량을, 부장·과장이 또 그보다 더 작은 차를... 차량이 계급이고 신분인 잘못된 문화가 공공영역뿐만 아니라 생활세계에도 완강히 남아 있는 것이죠. 자전거 탄 대법원장, 경차타고 다니는 전직 대통령, 걸어서 출근하는 장관, 친환경차로 바꾸고 있는 내각, 작은 차 타는 CEO... 이런 이야기들이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언제쯤일까요.

사람은 그 사람의 집이나 차량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성과 성품, 살아온 역사와 삶의 진정성 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실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때론 깊이 실망하게 됩니다.

생활세계에 뿌리박힌 이러한 잘못된 관념 외에도 사람들이 작은 차나 경차를 타지 않는 데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는 점도 작용할 것입니다. 작은 차나 경차에 대한 우대혜택이 약간 있긴 하지만,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작은 차나 경차가 연비가 아주 좋다거나, 승차감이 좋다거나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경차보다는 큰 차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기에 그만큼 경차 기술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게 교통관련 시민단체들의 지적입니다.

 

한국산 경차 마티즈
사진 출처 - GM대우 마티즈 홈페이지



 지난 달 <희망제작소>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서 조사한 결과(500명 전화조사)를 보면, 국민 69%가 “경차나 소형차에 대한 우대혜택을 확대해야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한 국민 70%가량이 “정부영역에서부터 경차사용 비율을 3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는 모범을 보여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 간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캠페인에 대해 행자부에서 발표한 대책에 ‘앞으로 행정부 소속 관용차량 중 일반 업무용 승용차의 경우 20%까지 경차비율을 확대하겠다’는 전향적인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 보다 더 많은 비율을 경차를 사용할 것을 주문한 것이죠.

현재 중앙정부의 전체 관용차(5만8천여 대)에서 승용차량 중 경차 비율은 총 9794대 대비 67대로 0.68%에 불과합니다. 국민들에게는 경차를 권유하면서, 관용차량부터 경차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소형차의 비율도 25%에 불과합니다. 전국의 지방정부의 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또 한국 사회 전체 차량현황을 보면, 극심한 에너지난과 환경파괴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경차 보급률은 4.9%로(2006년 6월말 기준. 전체 차량 대수 1566만2593대 중 경차는 76만여 대. 출처 : 건교부) 매우 저조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 선진국인 일본(26%), 이탈리아(45%), 프랑스(39%)와 비교해 보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인 것이죠.

정부는 이와 같은 국민들의 의견을 고려하고, ‘예산 절감, 에너지 절약,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실천 중의 하나로 전체 공공영역에서의 관용차량 중 소형차나 경차비율을 더 확대할 것을 추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많은 국민들이 ‘소형차나 경차’를 이용할 ‘메리트’를 못 느끼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소형차나 경차’ 이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우대책·유인책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자동차 회사들도 소비자들의 폭넓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더 나은 경차’ 개발에도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차량이 그 사람의 신분이나 계급을 나타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서글픈 일입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큰 차는 대기오염과 에너지 낭비의 주범 중의 하나로 지적받아야 마땅합니다. 사람간의 계급차이도 서러운데, 이제 사람이 사는 집과 사람이 타는 차량까지 서열을 매겨 계급차이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 지금의 현실은 혁파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공영역과 생활세계 모두에서 작은 차나 경차가 존중받고(제발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자전거나 도보를 최대한 이용하는 그런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교통·차량문화가 어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청주시청이 관용 자전거를 도입했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 여럿은 소형차를 운행합니다. 행자부도 경차비율을 늘리기로 했고... 바로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변해나갔으면 합니다. 이것이 최근 저의 간절한 희망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 희망칼럼 코너에도 함께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