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술자리 뒷담화' (연규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4:05
조회
656

연규련/ CJB청주방송 노조 상근활동가


 

근자에 자주 만나는 K는 대학 때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다고 했다. 밥 먹을 땐 반찬으로, 술 먹을 땐 안주로, 학교 때 생활이며 음악 이야기가 더해지는지라 ‘녀석, 꽤나 열심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K의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생겼다.

기대했던 대로 그 자리에서는 외국그룹 누구누구에 대한 얘기며, 재작년 공연에서 연주한 곡이 정말 어려웠다는 얘기, 00학번 선배는 요즘 어떻게 지낸다는 얘기들이 곁들여져 어떤 안주보다도 맛있고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사진 출처 - sbs


 

흥겨웠던 분위기의 중반쯤. 얼근하게 취한 K가 맞은편에 앉아있던 후배에게 갑자기 “지금 동방에 가서 내 기타 좀 가져와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집에 가져가서 연습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도보로 왕복 20분이 넘는 거리를, 자리가 파하지도 않았는데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 나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본인이 가져오는 것도 아니라 후배에게 말이다.

“정 필요하면 네가 다녀오면 되지”라고 한 내 말은 술에 섞어 마셨는지 못들은 체하고 앞자리의 후배에게 “빨리 가져오라” 소리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K. 그런데 불편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 후배, 어떤 기타냐고 자세히 묻더니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가는 것이다. 후배와 함께 돌아온 기타는 자리가 파할 때까지 구석에 박혀 있다가 집에 돌아갈 때쯤 다시 다른 후배의 어깨에 들러 메어졌다. 알고 보니 그 자리에선 K가 왕고(최고 학번)여서 K의 말이 곧 법이라는 것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K의 일화는 단지 술 취한 사람의 주정일 수도 있고, 특별히 유대감이 깊은 동아리 선후배지간의 습관적인 심부름일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 그 자리가 술자리였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 많다. 그리고 어느 땐 내가 K같은 입장이기도 했다. 내 눈에 든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는 보인다고 했던가. 상황이 갑자기 달리 보인다. K든, M이든, 나의 경우이든 재미있는 공통점은 언제나 이런 일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집단에서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서게 될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권력을 행사하고, 집단은 그의 방식을 당연하게(저항 없이) 수용한다. 무언가 구체적인 사례가 없을까? 프랑스 영화 ‘룩 앳 미’가 좋겠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기작가의 주위에 들러붙어 하루를 편하게 보내는 서글픈 인생들이 많다.

학교에서는 학번으로, 직장에서는 직책으로, 사회일반에서는 나이로 매겨지는 순번은 위계질서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목을 누른다. 가정에서 길들여지고 사회에서 인정받아온 이런 소통방식은 세습되고 교육되어져 사회를 지배하는 공식이 되는데 이 공식에 자기를 맞추지 않으면 ‘잘못된 답’이라는 낙인을 받는다.

술자리 친구의 이야기가 너무 크게 번졌나?

그렇다면 “이봐 K! 미안하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