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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애여성은 없었다 (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9 16:23
조회
576
대학 진학과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어머니가 기형인 딸을 낳았을 때 어땠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해도 나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결국 나를 원망하는 것으로 정신적인 혼란에 대처했을 것이다. 내가 며칠 만에 죽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 엘리슨 레퍼 -

 

그 많은 장애여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부터 10년 전 2007년 한국에서 세계장애인한국대회가 열렸을 때 전 세계 장애여성과 많은 한국의 장애여성을 만났다. 한국의 장애여성들은 얼마 전 유엔 회원국 82개국이 공식 서명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여성 관련 단독 조항을 마련할 만큼 전 세계 장애여성운동을 이끌고 쟁쟁한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국제적인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온 나라의 석학들과 지적 논쟁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장애 여성들을 정작 대학에서는 왜 그렇게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95년 장애인특별전형제도 이후 미흡하게나마 장애인 고등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고 교육환경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 ‘장애인’에게서 여전히 장애여성은 소수 중에 소수이고 약자 중에 약자일 뿐이다. 2001년에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장애여성 박지주씨가 학교상대 학습권 손배소에서 부분승소하고, 2002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장애여성의 고등교육 실태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이렇다 할 정책도 대안도 없이 20여 년이 흘러 장애인대학생 중 겨우 1/10(추정치)만이 장애여성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비율이 교대 및 사범대를 들여다보아도 이 같은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이번 정권이 장애인 교육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히고 정권 차원에서 여성의 지위를 올린다고는 했지만 장애 여성의 고등 교육을 위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 상상 1. 일반 학교, 일반 학급에 일반 교사로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 선생님, 고3을 맡다.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원임용에서 장애인 고용률을 지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교원임용우대정책- 장애인의 교원임용우대정책은 2005년에 개정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하 직재법)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이 법으로 국가 및 지자체 장은, 공안직군 공무원, 검사, 경찰·소방·경호 공무원 및 군인 등을 제외하고, 소속 공무원 정원의 2% 이상을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제 23조) 이에 소속된 각급 기관의 장은 장애인을 최소 2% 채용해야 하며, 장애인 공무원 수가 해당정원의 2%가 안 될 경우에는 5%를 채용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이는 재정경제부가 지난 4월 2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20대 중점과제 추진방안" 중에서 바로 교육부에서 내놓은 장애인 일자리 만들기 사업안이기도 했다. - 을 실시했다.

장애인 교원은 현재 전체 교원의 0.3%, 1500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장애인 2% 의무고용을 하기 위해서 최소 5천명의 장애인 교원(전체 31만3,914명 중에서 6,287명)을 임용해야 한다.

각 학교 교무실에서, 각 지역 교육청에서 교사들은 특수교육대상자로서의 장애인이 아닌, 동료 교사로서의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현재 교육대, 사범대 등 장애인 재학생이 185명(교육대 10명, 사범대 175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 교무실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안내견을 이용하는 장애여성을 만날 가능성은 적다.

많은 시·청각 장애인과 같은 감각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국가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같은 유형의 특수학교에 배치하거나 그 장애인 교사 출신 학교에 배정한다. 그리고 그 합격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성차별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일하고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여성도 있다. 물론 특수학교에 특수교사이긴 하지만.

변혁은 장애여성이 만들어 냈건만......

장애인을 위한 대학 정책을 실시 한지 22년이 지났지만 대학가는 장애 여성의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2001년 학교를 상대로 학습권 소송을 했던 숭실대 박지주씨의 투쟁으로 2003년 대학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평가제가 2년마다 시행하게 되었고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에서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타 설치를 명문화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뒤이어 올해에도 경남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의 석사과정에 재학하는 송정문 (34. 여. 마산시 내서읍, 경남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협의체 대표)씨가 최근 대학의 학교 법인을 상대로 2천 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숫자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장애인학생들보다 극소수에 해당하는 장애여성들이 두 번이나 소송을 제기했다는 일단의 사실만 보아도 장애여성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낙후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운동의 선두에서 운동을 새로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여성일진대 그 성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대학 진학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은 그만큼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차별 역시 참혹함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저시력 학급을 오랫동안 운영해 온 서울의 여의도 고등학교의 경우 남녀 공학임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을 위한 화장실이 그나마 구색이라도 갖춰진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장애여성은 대학이나 심지어 야학을 다니는 것조차도 집안과 가족의 허락과 동의를 구해 내야만 가능하다. 교육에서 장애여성들은 여전히 1960년대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인식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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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2013년 4월 연세대에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게시한 성명서 자보
‘장애여성 10명 중 0.5명만이 대학을 다니는 현실 이것은 크나큰 차별입니다.’


 

사회에 ‘능력’을 증명하는 것보다 사회로 하여금 장애를 인정하게 하는 일이 힘든 일인가?

장애여성이 ‘능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능력을 제대로 발현하고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95년도에 도입된 대학의 장애인특별전형제도는 도대체 어떤 기능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도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래의 고등 교육의 목표- 전문직 진출을 통한 계층이동의 기회 확대, 학문 후속 세대의 지속적인 배출 - 이렇게 크게 두 가지 기능 그 어느 것도 장애인에는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제 발표의 내용대로 대학 교육을 받은 장애 여성 중에서 전문 직종을 제대로 고용이 되어 중산층 진입을 위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장애 여성이 과연 얼마이며 학문 후속 세대로서 대학원 석박사 교수가 된 장애여성 교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한 두명 밖에 없다. 그 중에서 일반적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농아인 장애여성은 미국 Ohio State University 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 모 씨가 유일하다.

교육 차별에서의 장애여성의 이중적인 차별, 가부장적인 관점으로 인한 장애남성보다 열악한 가족들의 지원, 거기서 빚어지는 차별의 장애여성 스스로의 사회화 과정이 이 구조적인 고통 이면의 근본적인 본질일지 모른다.

게다가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여성들은 사업에 나와서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직접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자신을 ‘장애여성’으로 솔직히 인정하는 경우는 고학력, 고학벌 장애여성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맞춤 준비도, 지원체계도 어려운 것이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차별이나 혐오를 인정할 수 없는 ‘무장애’ 사회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장애여성이 아무렇게나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어학 학원 없는 실정에서 막막한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문제는 중증 장애여성일경우에는 지원 받기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 여성들이 비교적 많이 진학하고 있는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도 마찬가지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난청 장애여성 한 명은 미국 대학에서 2명의 전문 문자 통역 속기사들의 지원을 받아 아주 고급 인력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늘 당당하고 비장애인과의 사회적 교감이나 매너도 상당하다. 하지만 문자 통역 하나 없는 침묵의 직장 생활 속에서 얼마나 그 당당함을 유지하고 직장 동료하고 소속감을 만들 수 있을까? 여전히 장애 여성들은 ‘우리’에게 없다.
「비평이란 것이 반드시 ‘그러므로 이래야 한다’는 결론을 맺는 연역적 전개를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연역적으로 나가면 결국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은 싸우는 사람들, 즉 현 상태에 저항하고 현 상태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 이데올로기와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