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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에 대한 고문(拷問)을 이제 끝내야 합니다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8-22 15:23
조회
107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납니다. 심지어 같은 장면을 몇 번을 봐도 눈물이 납니다.
 이번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TV 화면 속에 보이는 일백 살 무렵의 부모와 일흔 살 즈음의 자식들이 만나는 장면은 볼 때마다 특별히 더 슬프고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예전에는 마냥 슬프고 애잔한 마음만 들었는데 이번에도 상봉 가족들이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남한과 북한 양측의 국가가 이산가족에게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자연스레 혼잣말로 욕지거리까지 나왔습니다.


 인터넷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검색해 봤습니다.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형식으로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의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진 이후 올해까지 21차에 걸쳐 직접적인 상봉이 이루어졌고 일곱 차례 화상을 통한 만남이 있었다고 합니다.


 통일부와 대한 적십자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남아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5만 6천 명이 넘고, 신청했지만 상봉하지 못하고 사망한 신청자는 7만 5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생존자 중 70대 이상의 고령 신청자가 85%이고 90세 이상이 1만 2천 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이번처럼 한 번에 100명도 안 되는 가족의 만남으로는 이산가족의 염원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헤어진 가족을 한 번도 만나기 어려운 현실도 문제지만 한 번 만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연락이나 만남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도 상봉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큰 아픔입니다.


 이번 21차 이산가족 상봉을 기념해 MBC 방송사에서 원로가수 현미 씨의 사연을 방송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두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남한에 정착한 현미 씨 남매들은 남북 간 정식 교류가 없던 1998년, 제3국 중개업자와 방송국의 도움으로 북한의 여동생 한 명과 극적으로 상봉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짧은 만남 이후 현미 씨는 동생 생각에 우울증에 걸려 치료까지 받아야 했고 20년 동안 남북 정부의 상봉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청을 해 봤지만 한 번도 재회의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여동생과 다시 만나기를 염원하던 현미 씨의 오빠와 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5년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상황변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식적인 직접 상봉 행사가 21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남한과 북한 양측이 이산가족의 상봉을 남북관계에서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정치적 이벤트이자 지렛대로 이용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처럼 전통적인 가족관에 대한 비판과 여러 급진적인 이론도 많습니다. 하지만 눈물과 감정이 남아 있을까 싶은 고령의 노인도 자식을 만나서 통곡하고, 형제가 죽어 대신 나온 조카를 만나서도 얼싸안고 우는 장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헤어진 가족이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인륜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일 것입니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염원에 정치적, 외교적 조건과 잣대를 들이대어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고 반인권적인 처사입니다. 남한과 북한 정부는 가족이 생이별한 전쟁피해자인 한반도의 이산가족들에게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잔인한 고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엔의 고문방지협약에서 정의한 고문의 정의는 “한 사람 또는 다수의 사람이 단독, 당국의 지시에 의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보나 자백을 받아 내거나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적, 또는 제도적으로 불합리하게 고통을 당하게 함으로써 정신적 및 육체적 해를 가하는 행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문에까지 비유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를 찬찬히 읽어보면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자유롭게 만나지 못했던 이산가족들은 정부 당국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불합리하게 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해를 입고 살았습니다. 긴 세월 동안 이산가족들은 광의의 의미에서 고문을 당하고 살았던 것이지요.


 시시때때로 변하는 복잡한 외교와 정치 상황에서 어쩌면 고정불변의 정답과 대응정책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지 65년이 지나도록 고통 받는 남과 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더는 정치와 외교의 기회와 조건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발언에 이산가족문제의 정답은 다 나와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3600여 명이 매년 돌아가셨고 올해 상반기에만 3천명 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헤어진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천추의 한을 안고 생을 마감하신 것은 남과 북의 정부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그분들의 기다림이 더 이상 길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더욱 확대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남과 북이 해야 하는 인도적 사업 중에서도 최우선적인 사항입니다.
남과 북은 더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상봉행사는 물론 전면적 생사확인, 화상상봉, 상시상봉,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합니다. 특히 오래전에 남북 합의로 건설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취지대로 상시 운영하고 상시상봉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 발언내용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하루빨리 만나서 결과를 내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