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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경제반대행동(Vampire Capital Hunter)” 작명기 (홍성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37
조회
619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정부가 최고의 투기자본


오래 전, 지하철 9호선의 “혈세 낭비”문제로 투자은행 맥쿼리와 한창 싸울 때 일이다. 맥쿼리에서 사무실로 내방을 하겠다며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맥쿼리의 상무가 직접 자신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정치인을 상대로 해명을 한다고 했다. 결과는 충분히 예상이 되지만, 굳이 만남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만났다. 그는 30년 간 장기간 투자를 하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서 자신들이 “투기자본”이 아니라고 했다. 즉, 자신들은 ‘단기간에 먹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별로 설득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항변에 대해서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는 “우리 맥쿼리의 (고)수익 모델을 두고 투기자본이라 한다면, 한국정부가 가장 큰 투기자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맞다. 맥쿼리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이름을 날린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들의 금융사에 최대의 투자자는 정부이다.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고 직접 운영을 하는 국민연금과 모든 공적 연기금, 정부가 관리감독을 하는 시중 은행과 모든 금융기관은 경쟁적으로 사모펀드 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다른 투기자본들과 고수익을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자본(?)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부이다.


최근, 국내 유수의 유통업체인 홈플러스를 7조 원에 인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주요 투자자도 국민연금이다. 케이블 방송 C&M 사태에서 드러난 MBK파트너스 행태는 시민사회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인수가 2조 2천억 원 중 70%, 1조 5천억 원 이상을 C&M의 자산을 담보로 국민연금과 금융기관의 자금을 차입해서 C&M을 인수(이른바, 차입매수-LBO)했다. 그 결과, 천문학적인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고배당 등으로 C&M의 자산을 끊임없이 ‘약탈’했다. 더하여, 동종 업계 최저임금 강요와 열악한 근무환경 제공, 끊임없는 해고와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또, 방송가입자에게는 자신들의 과도한 수익을 위해 수탈적이고 불법적인 영업을 하였다. 위탁계약을 맺은 협력업체들에게 수수료 단가를 일방적으로 조정하거나, 협력업체에게 고객 요금의 대납을 요구하는 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이른바, “슈퍼 갑질”,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수시로 저질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매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조사와 시정조치를 한 바 있다. 즉, MBK파트너스가 C&M를 장악한 후, C&M의 모든 이해관계자는 그들에게 가공할 약탈을 당한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C&M 뿐 아니라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들과 중국, 일본, 대만의 기업들도 공격적으로 인수를 하였는데, 국민연금과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투자로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MBK파트너스는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뿐일까? 아니다. 이랜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 일어난 해고와 노동권 약화, 그리고 광범위한 ‘약탈’이 일어나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 되었다. 국민연금만이 아니다. 퇴역군인들의 노후를 위한 군인공제회는 앞서 거론한 맥쿼리와 투자약정을 맺고 주요 국가기간 시설에서 세금을 ‘약탈’해서 성장해왔다.


국민연금과 연기금들은 국민들의 노후를 위해서 무자비한 수익창출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오히려, 소득저하와 인구감소로 납부액이 줄어들자 국민연금과 공적 연기금의 지급률을 무조건 낮추고 있다. 이를 두고 모두들 “연금개혁”이라고 말한다. 실상은 말이 좋아 개혁이지, 복지란 미명으로 자행되는 ‘사기’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유니슨캐피탈, 보고인베스트먼트, MBK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들로 구성된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들이다. 이들이 국민연금의 실제 주인이다. 매년 수 조원의 운용보수를 챙기고 있다. 이들은 자신과 자신들과 같은 사모펀드 등에 지금과 같은 거액의 투자를 계속하고 있고, 그들(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는 지금과 같은 약탈이 멈추지 않는다.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도 정부는 국민연금을 걷는 일만 맡고, 그 운용은 (사모펀드들이) ‘독립적’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다. 세계의 주요 국가는 천문학적인 공적 연기금(한국의 경우 국민연금은 500조 원으로 세계 3위)을 쌓아 놓고, 고수익을 위해 투기자본으로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국민연금과 공적 연기금을 ‘폐지’하고, 본래의 “부과식 연금”으로 되돌아가거나, 전적으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부조에 기반을 한 복지체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전지구적 ‘약탈’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납부자를 상대로 “연금개혁”이란 사기극도 계속될 것이다.


22045829_YJW_1100.jpg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에서 연 확대간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MBK에 노조와의 대화와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흡혈자본은 세계경제의 동력


지난 2월, 내가 속했던 단체는 공동대표의 부적절한 금품수수 사건으로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당했다. 그날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하거나 행동해도 언론은 외면했고, 공개 토론장에서는 적들에게 모욕도 당하고, 어떤 연대단체에게는 조롱도 당했다. 결국, 조직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해야 했다.


회원들과 연대단체 동지들과의 오랜 숙의 속에서 찾아낸 것은 단순히 2월에 일어난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이념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과거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고 먹튀를 하는 자본의 행태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약탈 행위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주요한 동력은 무엇인가? 시장에서의 약자에 대한 ‘상위 포식자의 무자비한 약탈’이라고 본다. 때로 이것을 성장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 상위 포식자란 누구인가?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거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각국의 금융회사들’과, 거기에 투자하는 각국의 부유한 크고 작은 ‘자산가 계급(property classes)’인 것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약탈적 자본주의(predatory capitalism)”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을 바로 세계경제의 동력으로 지목하고, 이것을 동시에 “약탈경제”로 명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새로운 유형의 ‘생산적 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베블렌, 케인스, 마르크스, 갈브레이스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아무런 생산적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 약탈에 의존하는 자산가 계급, 유한계급이 자본주의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고 한 그들의 비판에서도 이것의 정체를 찾을 수 있다.


앞에서 국민연금과 사모펀드의 약탈 문제를 단순히 어떤 사건과 특정 행위가 아닌 구조적인 경제 문제로 거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특정 기업과 노동자를 공격했던 어떤 사건의 문제가 아닌, 약탈의 빨대를 꽂아 두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자본을 “국민경제” 속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 예시를 든 것이다.


우리단체 이름을 정할 때 일이다. 출범 준비회의에 참석했던 연대단체 젊은 여성 동지는 “약탈이란 말이 너무 ‘Old’합니다. ‘흡혈귀’, ‘흡혈자본’란 말이 이것들의 실체에 더 정확한 표현이고, 감성적으로도 젊은 사람들에게 맞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갑론을박(甲論乙駁) 속에서 단체의 영문 이름은 Vampire Capital Hunter가 출현한 것이다.


사실, 나는 준비회의 상에서 “약탈경제”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그것은 고구려(高句麗)나 유목국가의 경제를 지칭하는 “역사 용어”였기 때문이다. 차차 생각해보니, 그 둘의 범주는 다르지만, 유사한 개념의 말이라는 것에 결국 동의하게 되었다. 예속된 하호(下戶)들이 멀리서 쌀과 식량, 생선과 소금 등 져다가 바친 것을, 아무런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앉아서 받아먹은 고구려 1만여 명의 “좌식자(坐食者)”나 오늘날의 자산계급이나 결국은 같다.


그리고 시민운동이란 ‘전문가와 엘리트를 통한 대의’가 아닌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어야 하니, 약탈경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강조해 단체 이름에 “행동”이 들어갔다. 좋은 이름이라 자평한다.


그렇게 지난 8월 31일 우리단체는 출범했다. 하지만 고민이다. 여전히 개별 피해자들과 함께, 특정 (약탈)자본의 범죄행위를 찾아 고발하고, 응징하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이다. 가야할 방향은 명확히 찾았지만, 가야할 길이 너무 먼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옛 성인도 “성자천지도(誠者天之道)이고, 성지자인지도(誠之者人之道)라” 했지 않았는가!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진실로 옳다면,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면 되니까!


이 글은 2015년 10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