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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라는 도깨비 방망이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30
조회
27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임금피크제를 도입 하지 않으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덤빈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노동개혁만이 살 길이요라며 외치고, 곧이어 정부와 집권당이 똘똘 뭉쳐 노동개혁을 외친다. 그런데 노동개혁의 핵심이 임금피크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인건비를 절약해 청년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란 분은 올해 안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내년 임금 인상 때 불이익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특정 연령이나 호봉에 도달하면 그 뒤로는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공공기관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절약하는 인건비로 신규 채용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금피크제만 도입하면 청년실업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지방공기업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하는 행자부 공기업과 관계자는 “정년을 연장하는 기관은 정년 연장으로 인해 줄어드는 퇴직자 수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이미 정년이 60세 이상인 기관은 정년이 1년 남은 재직자 수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목표설정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정부의 태도는 정책이 아니라 마술 혹은 자기최면에 빠져 버렸다. 생각해보면 냉정한 진단에 근거한 처방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희망에 근거해 도입한 정책이 결국 원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남아있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내걸고 시작했던 새만금사업은 지금은 세계적인 제조업 물류 관광 레저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사업이 돼 버렸다. 심지어 4대강사업은 원래 취지가 하도 바뀌어서 지금은 왜 시작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공공부문 인사제도에 대해 말한다면 성과평가제도가 딱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다. 개개인의 성과를 평가해 급여에 차등을 두면 공공부문 성과가 늘어날 거라며 시작했지만 그 제도 덕분에 성과가 늘어났는지는 모르겠고 조직 내 위화감과 갈등의 원천이 된건 알겠다.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책효과가 정부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반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이 6월에 쓴 임금피크제 관련 보고서에서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임금피크제는 마법의 열쇠가 아니다”면서 “전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전면도입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다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과 무척이나 다른 맥락이다. 특히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과 맞물려 등장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인건비 절감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지 미지수이고, 따라서 청년일자리 창출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는 지적은 진지하게 새겨들어야 할 지적으로 보인다.


SSI_20150827181958_V.jpg4개월 만에 손잡은 노사정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위원회
4자 대표자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들은 지난 4월 8일 협상 결렬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해당 공공기관 노조에서 임금하락을 이유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반대하는데 그걸 어떻게 설득할지도 미지수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부에선 가이드라인이나 정부시책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럴수록 현장에선 충돌만 거세진다. 거기다 정부가 자꾸 '반드시 언제까지 달성하겠다'는 방식 역시 지난해 공무원연금개혁 얘기가 나오고 나서 마감시한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면 무척이나 식상해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처음 도입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2만 2231곳(도입률 9.9%)이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16.9% 300인 이상 사업장은 23.2%에 이른다. 반면 임금피크제 도입할 계획을 가진 사업장은 5.6%에 불과하다.


지방공기업 중에서는 광주도시공사, 송파구시설관리공단, 경기도시공사 등 세 곳뿐이다. 왜 이렇게 임금피크제 도입이 제대로 안되는지, 단순히 '노조 반발'이 아니라 뭔가 기존 제도와 상충되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임금피크제를 강조하는 의도 역시 불순해 보인다. 임금피크제를 우선 도입하겠다는 대상은 주로 공공부문 정규직이다. 지금처럼 노동시장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선 그나마 처우와 급여가 좋은 편에 속하는 이른바 상층노동부문이다. 노조 조직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대중들의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들의 처우를 낮추는 개혁은 노동시장 양극화에 기대 대중의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그럼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가 진솔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물론 그럴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겠다).


이 글은 2015년 9월 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