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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없는 복지’? ‘복지없는 증세’!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10
조회
204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대통령 박근혜는 2012년 선거 당시 각종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담론을 통해 적어도 복지정책 부분에선 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는 위치를 잡았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복지정책도 내놨다.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던 기초연금은 사실 진보신당 의원 조승수가 대표 발의한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보다도 '과격'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세웠던 것은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세출구조조정이었다. 사실 '증세없는 복지'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논쟁 대상이었지만 박근혜는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증세라는 부담스런 정책도 피해가고, 복지공약으로 중도층 표심까지 얻는 전술은 선거에선 무척 성공적이었지만 선거 이후 실제 정책을 펴는 데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됐다.

사실 재정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선공약이 자기모순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애초에 새누리당은 각종 복지공약으로 치장한 두툼한 정책자료집을 냈지만 자료집 어디에도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은 적어놓지 않았다. 거기다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에선 활로를 못 찾고, 비과세감면은 지지부진하며, 세출구조조정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과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두 외과 수술하듯이 단번에 환부만 도려낼 수가 없는 문제다. 모두 전체적인 조세재정제도라는 큰 틀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신용카드 활성화와 현금영수증 제도의 의의를 과소평가하지만 두 제도는 세원투명성 강화를 통한 증세 효과 뿐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도 적지 않았다. 당장 뭔가 대단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비과세감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큰 논란이 되는 연말정산이 바로 비과세감면을 통한 사실상 증세 효과를 위한 정책이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민심이반은 비과세감면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잘 보여준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같은 사실상 대기업 특혜를 종료시키는 것은 좋은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정부의 지지기반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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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서울신문


세출구조조정은 더 어렵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포기할 수 있을까? 각종 도로건설 예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당장 국회와 지자체, 재계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한국 재정제도는 기본적으로 점증주의다. "예산항목을 원점재검토하겠다"는 선언은 정치적 수사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정책에선 원점재검토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조차도 선택과 집중 지점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다. 전략이 없으면 구조조정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복지와 무관하게 증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11일자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수결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기침체도 원인이 아닌건 아니지만,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먼저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소득세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축소, 비과세감면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거기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가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과장하는 것이 세수결손 규모를 키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증세없는 복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증세없는 복지' 논쟁은 허깨비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증세없는 복지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복지확대를 안 해도 증세가 불가피한데 복지확대까지 하려면 당연히 증세를 해야 한다. 그걸 갖고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한국사회 담론지형이 왜곡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복지없는 증세'는 논쟁의 핵심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 담론은 '증세를 할래, 아니면 복지를 포기할래'라는 대국민 협박에 불과하다. 이건 두 가지 면에서 혹세무민을 한다. 먼저, 연말정산 논란과 담뱃값 인상에서 보듯 정부가 이미 증세를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복지확대를 한 것인 양 눈속임을 한다는 점이다. 세대 간 불평등을 전제로 한 기초연금, 2012년에 여야합의로 확대한 무상보육 말고 정부가 무슨 대단한 복지확대를 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들은 왜 분노하는가. 복지패널조사 등 여러 조사, 무상급식 주민투표, 폭발적인 복지논의가 지배한 총선과 대선 등을 통해 보면 국민여론은 복지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증세를 감당하겠다는 여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현재 논란은 '복지없는 증세'가 초래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해법은 '복지있는 증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