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세상은 엉망진창’, 그래도 다시 희망을 얘기해보자 (송채경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08
조회
237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요새 ‘세상은 엉망진창’이란 말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그렇다. 새해 희망에 대한 얘기 대신에 오른 담뱃값에 대한 걱정이나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취업준비생들의 한탄, 안 그래도 낮은 출산율에 공포스러운 어린이집 구타 소식만 들려온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진보를 지지하던 이들은 지난해 말 이뤄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절망을 느꼈고, 중도층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부진함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층들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돌부처식’ 반응에 그 공고하던 지지층들의 마음도 조금씩 금이 가는 중이다. 아무도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새해는, 달력의 날짜가 바뀐다는 사실을 빼고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녁이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삶을 개탄하고 이 나라 정치를 비판하고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며 입에 쓴 소주를 털어넣는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은 얘기한다. 정부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 사고’로 위장했는지, ‘정윤회 문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어떻게 ‘청와대의 개’가 됐는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찬바람 맞으며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러나 그들은 또 얘기한다. 이렇게 한탄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질까. 그래서 사람들은 몇 시간의 한풀이를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이나 쌍용차 굴뚝 농성장이나 이 사회의 비참한 현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존재가 미약하고, 조용하고, 언론에서조차 주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는 사고 충격에 우왕좌왕하는 희생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잡아준 민변 변호사들이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청소라도 하겠다며 나선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도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폭식 투쟁의 조롱을 견디며 유가족들과 함께 단식에 나선 이름 없는 이들이 있었다. 쌍용차 굴뚝 농성을 응원하는 가수 이효리 씨도 있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얼음 바닥에 몸을 누이는 ‘오체투지단’도 있다. 상식 있는 헌법학자들과 민주주의 연구가들은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해 ‘종북딱지’가 붙을 것을 감수해가며 그 결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리가 이들의 노력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난 1월20일 <한겨레 독자·시민 특강>에 나선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밭에 잡초가 너무 많은 것을 한탄하기만 한다. 아무리 잡초를 뽑아봐야 어차피 다 뽑지 못할 것이라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서서 잡초를 하나라도 뽑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하더라도 잡초는 그만큼 없어진다.” 홍 이사장은 먼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가진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부터 설득하라고 제안했다. 당장 몸을 치료할 의료비가 없어 걱정해야 할 이들이 ‘무상 의료’에 대해 말하면 “그 많은 돈을 나라에서 대주다가 나라 살림이 거덜나면 어쩌느냐”고 걱정하는 ‘아이러니’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권력자들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국민들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자신이 없다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지금의 정당정치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미래의 정당을 꿈꾸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조직에 참여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권력 견제를 지속하면서도 대안 정당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세상이 더럽다고 해서 사회를 외면해버리지는 말자는 얘기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추이를 지켜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힘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 잠재력의 다른 말이 바로 ‘희망’이 아닐까. 엉망진창 2015년,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