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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07
조회
191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여전히 안녕들 하신지. 1년 전, 안녕하냐는 한 대학생의 물음에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1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안녕하지 못하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로 안녕하지 못했다.

300명의 목숨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정말로 참혹했고 비참했다. 갑과 을,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이 사람의 생명을 두고도 유효했다. 보편적인 ‘인권’ 조차 사회적 갈등 앞에 무너져 내렸다. 정치 논리와 이념적 대립 앞에서 본질은 없었다.

그렇게 2014년의 봄이 지났고, 다시 차가운 겨울이 올 때까지 사회는 매한가지, 변한 게 없었다. 땅콩 한 봉지를 두고 ‘갑질’하는 재벌 집 딸을 보면서 사람들은 손가락질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다시 학습해야만 했다.

맞다가 죽은 이등병과 그를 짐승보다 더 못한 존재처럼 취급하던 병장처럼, 아주 작은 권력조차도 한국사회에서는 ‘사는 부류’에 있을 것인지, ‘죽는 부류’에 있을 것인지 그 위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돼버렸고, 지난 1년간 우리는 그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확인해야만 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갑과 을이라는 계급으로 촘촘하게 나눠진 현실에서는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 평등할 권리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높게 올라가야만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소수였지만 시민들로 이뤄진 하나의 정당이 허무하게 해체될 때, 담배값을 비롯해 온갖 세금이 오르면서 시민들에게만 부담이 가중될 때, 나는 정말 대한민국이 ‘나쁜 나라’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은 권리를 보호받는 것을 기대하기는커녕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권력은 힘없는 ‘을’들의 서글픈 눈물을 짜내 유지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나쁜 나라’의 모습이 지역사회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뉴스 속에 나오는 거물급 인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로 인해 살기 팍팍해진 보통의 사람들도 나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쁜 일들에 가담한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사회인 것이다.

1년 전 지역에서는 멀쩡한 소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수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보험사기 행각으로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150여 명에 달하는 축주들과 축협·낙협 직원, 수의사, 소 운반상 등이 수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가담한 일이었다. 이들은 소의 다리를 린치에 묶어 허공으로 들어 올려 걷지 못하게 만들었고, 수의사는 가짜로 진단서를 끊었으며, 축·낙협 직원들은 허위로 보험서류를 작성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건 가축재해보험을 담당하는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부실한 관리와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취재·보도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세월호 사고가 났는데, 선장과 승무원들의 대처, 선박에 대한 허술한 관리, 한 종교단체와 정치의 유착 등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는 부조리가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너무나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위부터 아래까지, 서울부터 지역까지 썩지 않은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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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최고 해돋이 광경을 자랑하는 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 일출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인사한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시라고, 내년 한 해에는 좋은 일 가득하시라고. 안녕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또 다시 해넘이와 해맞이를 앞두고 있다. 딱히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체념하듯 살아가지만, 그러나 여전히 꿈꾸며 인사한다. 부디 안녕하시길, 2014년보다는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