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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나오며(서동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2-27 16:08
조회
1004


서동기/ 인권연대 간사


 겨울의 한라산은 고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학에서  마지막 시험을 마친 직후 한라산에 다녀왔다. 성판악 등산로를 9시간 정도 왕복하며 백록담과 여러 오름들을 만났다. 일출을 맞으며 조금씩 오르다보니, ‘한번 구경 오이소’라고 기억하면 된다는 1950m 높이의 한라산은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가쁜 숨을 내쉬고 얼마를 오르다 문뜩 주변을 돌아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주위를 감쌌다. 늦가을 날씨 같았던 출발점에서 저벅저벅 오르다 보니 서리와 눈꽃들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상을 만나기 직전 30분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거센 바람 속에서 봄까지도 녹지 않을 두텁게 쌓인 눈과 얼음들을 만났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며 종종 지나간 시간과 새로운 출발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의 시간은 한 장의 성적표로 남았다. ‘고3’이 되던 2010년 고려대 학생 김예슬씨의 자퇴 선언을 보면서 ‘나도 좋은 대학에 우선 입학하고 영 아니면 멋지게 자퇴해야지’하고 생각했는데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다.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는 욕심에 수능 시험을 몇 번 더 치르느라 입학이 늦었고, 군대에 다녀온 2년을 포함해 6년의 시간동안 인문학을 전공했다. MB의 집권과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이제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교육의 ‘완성’ 또는 끝 정도로 여겨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입시 이후 대학의 수많은 시험들을 치르고 견디며 손에 쥔 마지막 전체 성적표 한 장에는 수많은 등급들이 나열되어 있다. 성실하려 노력했고 대부분 A+나 A학점이고 B+가 가끔 보인다. 기뻐해야 하나? 졸업 이후를 생각해봤다.


 소위 ‘SKY’로 대표되는 대학의 서열체제 안에서 ‘인서울’과 ‘지방대’의 구분, 그리고 그 안에서 학점, 스펙 경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교육 시스템을 졸업과 함께 벗어던질 수 있는가 했더니 그렇지 않다. 졸업 즈음에는 대학서열체제에서 그대로 연장되어, 9급 공무원‘시험’과 5급 공무원‘고시’로 상징되는 몇 등급짜리 삶 가운데 어딘가로 편입되려 다시 애를 써야한다. 대학이라도 나와 이런 시험에 응시할 기회라도 얻으면 어딘가에 편입될 기회라도 얻는 것일까. 사회생활의 ‘전선’으로 나가면 2016년 구의역의 97년생 김군, 2017년 제주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99년생 이민호군, 2018년의 24살 김용균씨가 되어 버리고 만다. ‘전선’에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에 눈 감고, 귀 닫아 어딘가에 편입될 수 있도록 부단히 견뎌야 한다.



사진 출처 - pixabay


 우리사회에서 체제에 편입되기 위한 견딤은 꽤나 굴욕적이다. 수능 시험에서는 외국인이 쓰지도 않는 단어로 구성된 복잡한 영어 문장들을 ‘돌파’해내야하고,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수 만개의 문제들을 달달 풀어내는 연습을 한다. 이런 견딤을 거부하면 ‘영포자‘, ’수포자‘가 되어 사회의 ’전선‘으로 내몰린다. 이러한 견딤은 대학에서도 이어진다. 직장인이 되어 낡은 강의노트를 반복하는 교수들의 말을 빠짐없이 기억해 좋은 학점을 만들어야 하고, 외국어로 소통은 한마디도 못하지만 토익 고득점을 위해 무언가를 다시 외우고, 반복하며 견뎌야 한다. 이를 견디지 않으면 장벽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를 견디기 위해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버티거나, 조금 더 여린 이들은 세상을 스스로 등진다. 견디지 못하는 자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렇게 견뎌내는 시간은 그 사람에 대한 커다란 모욕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생활에 이르기까지, 수험생뿐만 아니라 직장인이 되어서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견딤은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깔보고 우습게 여기는 것들이 너무 많다. 견딤은 사회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에도 파고들어 가부장 문화의 희생과 견딤을 수많은 엄마와 딸들에게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학교에 다녔고 졸업을 앞둔 지금, 나는 더 이상 모욕을 견디고 싶지 않아졌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걸까. 운이 좋게 모욕을, 모욕이라 말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분들이 있었다. ‘전선’으로 밀려나가지 않으려 견디는 것이 아니라 모욕적인 ‘전선’ 자체를 사람답게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모욕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연대와 구체적 실천을 통해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모욕을 견딜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 20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인권연대에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긴장과 설렘을 안고 새 길 위에 서있습니다. 겸손하지만 치열하게 배우고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