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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벌을 말해서 바뀌는 건 없다 (서동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29 17:25
조회
801


서동기/ 대학생


 강력 범죄가 발생한다. 가해자 X의 잔혹한 범죄와 피해자의 참혹한 피해가 연일 언론에 정밀하게 묘사된다. 가해자의 심신미약, 정신질환에 의한 형벌 감경 가능성이 언급된다. 분노는 더욱 타오른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하고 많은 이들이 동참한다. 사악한 X의 신상 공개결정이 내려진다. 끔찍한 짓을 하고도 살아있는 뻔뻔한 X의 얼굴과 목소리는 브라운관과 4G, 5G의 인터넷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중개되고 가해자에 대한 각종 분석과 피해자 가족의 고통에 찬 일상이 후속 기사로 따른다. 그리고 조금 뒤 X는 어디선가 등장한 또 다른 사악한 X’로 대체되어 있다.


 며칠 전 친척들 여럿이 모였다. 대화는 ‘피시방 살인사건’으로 흘렀다. 어른들은 뉴스에서 본 범죄의 잔혹함을 공유하고, 아이들은 페이스북에 담당 응급실 의사가 올렸다는 글을 이야기한다. 범죄의 잔혹함에 치를 떨고, 사형을 해서라도 강력하게 처벌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분노한다. 그리고는 각자 조심하라는 안쓰러운 당부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누구나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아마 이러한 사건은 다시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비슷한 패턴으로 사건을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진출처 - pixabay


 우리 사회를 다시보자. 가해자의 가족을 끈질기게 쫓고, 주변인들을 찾아내어 온갖 가십들이 사명감에 찬 언론에 의해 근엄하게 보도된다. 이번 사건에는 담당 응급실 의사까지 등장했다. 피해자 담당 의사는 피해자의 참혹한 상태와 분노를 SNS에 작성한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 등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는 글은 20만의 공감을 받으며 퍼져나갔다. 담당의는 자신의 글이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과 진상 조사, 재발방지’의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언론의 사명에 찬 보도와 응급의학과 의사의 분노 표출은 무언가 닮아있다.


 다수 언론의 보도와 모 의사의 사명감에 찬 분노를 보면서 ‘주석궁으로 탱크 진격’을 말하던 이른바 ‘대북강경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과도할까. 그들의 주장은 과격한 언어와 묘사를 기반으로 형체 없는 분노와 적대심만을 재생산한다. 그것이 결국 오래토록 분단 상황을 고착화해왔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이런 ‘수구적’ 행태에 언론과 모 의사의 선의에 찬 경솔함을 빗대는 것이 과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죽음과 사건사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음, 해결의지 없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단지 분노에 차서 엄벌을 말하고 주목경쟁을 하는 것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넘어설 수 없다.


 냉정하게 지금 우리 사회가 정밀 묘사해야 할 것은 무언인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자살로 12,463명, 운수사고로 5,028명, 산업재해로 2,040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에 자살로 34명, 운수사고로 14명, 산업재해로 5.5명이 죽었고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올해도 죽고 있을 것이다. 한편 타살로 세상을 등진 이들은 지난해 총 415명이다. 과도한 분노 표출과 이를 자극하는 주목경쟁들이 가해자 하나를 엄벌에 처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우리 사회의 주목받지 못하는 죽음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엄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도 명확하다. ‘조두순 사건’ 이후 흉악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 유기징역의 가중 상한이 최대 50년까지 늘었지만 사악한 X는 X’가 되어 끊임없이 등장해왔다. 이것은 단순히 형벌의 강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명감에서 비롯된 비판(의식)과 범죄에 대한 분노가 단순히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리게 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분노와 엄벌을 넘어서는 논의와 정치,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숙제 앞에서 우리는 너무 비슷한 패턴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