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범죄도시 이야기 세 번째 - 지하철 치한(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1-31 17:30
조회
1761

이회림/ 00경찰서


 지하철 치한(癡漢)은 지하철 안에서 여성을 상대로 동의 없이 특정 신체부위를 접촉하는 행위를 하는 자를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성추행, 성폭행 범죄자에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안이나 공공장소에서도 치한들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지하철은 그들의 주무대이지요.


 성기를 여성의 신체에 갖다 대거나 한술 더 떠서 비비적거리기, 치마 입은 다리 안으로 손을 넣어 만지기, 바지 허리춤에 손 넣었다 빼기, 주먹으로 엉덩이나 허벅지 건드리기, 지하철 하차 시점에 엉덩이를 꼬집고서 자연스럽게 도망가기 등 그 수법이 매우 치사하고 다양합니다.


처벌조항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 대중교통수단, 공연·집회 장소, 그 밖에 공중(公衆) 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사람을 추행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이 아닌 경우
 움직이다가 여성과 우연히 부딪치거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등을 보려고 팔을 위로 뻗었는데 신체에 닿았거나, 지하철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타인에게 떠밀려 신체 접촉을 했을 경우 등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정되어 성추행에 해당되지 않음.


 저 또한 수년 전, 서울의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엉덩이를 세게 꼬집히는 추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지하철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누가 저를 꼬집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한순간 이상한 느낌에 ‘어~?’ 하면서 뒤를 돌아봤지만, 지하철 문이 열리고 수십 명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뿐이었습니다. 제 눈앞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못난 인간이 그런 짓을 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출근시간의 1호선도 정말 힘든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3일 연속으로 사건, 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누가 쓰러지거나, 추행을 당하거나, 자리 문제 때문에 서로 욕설을 하며 싸우거나 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저의 바로 뒤에서 추행을 당한 20대 여성 승객이 112에 신고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켰습니다. 저라도 개입해서 그 여성을 도와줄 마음으로 조용히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경찰이죠? 지하철에서 추행을 당해서 신고하려고요. 여기 1호선 2345열차 안이고 5번째 칸이고요. 지금 용산역 지나가고 있어요. 경찰 좀 보내주세요.” 그 분은 차분히 현재 위치를 설명하면서 한 손으로는 상대방 남성의 옷깃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자가 도망가려고 해서 제가 옷을 꼭 붙잡고 있거든요. 만원 지하철 안이라 역에 내리지 않으면 움직이기 힘들고요. 이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승강장 바로 앞까지 와주세요. 꼭!”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상황을 112 신고 접수 요원에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여성의 바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 남자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면 얼른 따라붙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경찰신분증을 꺼내 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지하철이 서울역 승강장에 다다랐고, 차창 밖으로 순찰요원들이 보였습니다, 문이 열리자 그 여성은 남자의 옷깃을 휙 잡아끌며 재빠른 몸놀림으로 전철에서 내렸습니다. 그 여성분은 갑작스럽게 불쾌한 일을 당했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게 그리고 당차게 잘 대처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습니다. 저녁 7시경 지하철 1호선 안, 40대 남성 A씨가 안양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 1호선에서 20대 여성 B씨를 추행했습니다. B씨는 등 뒤에 서 있던 A씨가 자신의 신체를 만지는 것을 느꼈으나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이를 곁에서 지켜본 한 40대 여성승객이 조용히 B씨를 잡아끌었습니다. 이렇게 B씨는 곧바로 자리를 이동했으나, A씨는 계속 B씨를 뒤 따르며 B씨의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문질렀습니다. B씨가 울먹이며 앞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뒤에 있는 분이 자꾸 나를 만진다”며 도움을 청했지만, 오히려 A씨는 B씨에게 “저 때문에 우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40대 여성은 성추행범인 B씨의 멱살을 잡고 “이런 짓 그만해”라고 소리치며 제지했습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한 시민은 재빨리 역무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출동한 역무원과 40대 여성이 함께 성추행범을 지하철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 뉴스


 자, 어떻습니까? 여러분!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였던 40대 여성이 성추행범 B씨의 멱살을 잡고 ‘이런 짓 그만하라’고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범죄 상황에 뛰어 들었습니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피해자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구경만 하던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그 여성의 정의감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사례를 보면서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경찰이 최대한 빨리 신고 현장에 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범죄 앞에서 우리 모두가 경찰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40대 여성분의 사례처럼,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현장의 목격자들께서 도움주실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여러분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면 20대 여성처럼 용기를 내시어 침착하게 신고를 하시고, 목격자 중의 하나가 되는 상황이라면 40대 여성처럼 곤경에 처한 피해자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2020년에는 지하철 범죄가 급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처지에 공감하는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용기 있는 행동들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