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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과 구룡마을 최공돌 할머니(김아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0-30 15:29
조회
1297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최공돌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구룡리다. 구룡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구룡리는 충남 홍성에 있는데, 홍성은 바다가 가깝고 논이 넓다. 최공돌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마을회관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한글을 배우고 있다. 80세가 가까워서야 공부를 시작해 이제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은 생전에 할머니가 제 이름 석자를 쓰지 못하는 것을 두고 종종 타박했다. 할머니는 습자지에 이름 석 자를 쓰고서 가장 먼저 남편을 떠올렸다.


 나는 홍성에 가 본적이 없다. 최공돌 할머니를 만난 적도 없다. 앞서 언급한 정보들은 모두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날 프로그램의 주제는 할머니들의 늦은 배움이 아니었다.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연필로 적어 내려간 의젓한 생김새의 글자들보다, 공부를 마치고 끓여 드시는 소꼬리탕과 해물탕이 더욱 무게있게 다뤄졌다.


 그날 소꼬리 전골과 신선한 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다만 그녀들의 글씨가 마음에 남았다. ‘홍성은 바다가 가깝고 논이 넓다’는 대목에서, 할머니들 고생이 많았겠구나, 짐작을 시작해서였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들은 아마 바다가 주는 일, 논과 들이 주는 일들을 두루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부지런히 그 일들을 하고 계실지 모른다. 고향의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이른 새벽 밭일을 하고, 해가 뜨면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고, 돌아와 아이 젖을 물리고, 다시 밭으로 나가 종일 돌을 골라내어야 했던 젊은 시절의 ‘삼춘’들을 구룡마을에서도 보는 듯했다.


 방송을 보다 말고 메모지를 꺼내 최공돌 할머니와 구룡리의 이름을 적어둔 것은, 마침 그날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기 때문에 눈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내가 특별히 눈물이 많아서는 아니었고, 극장을 나서는 다른 관객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의 원작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내 세대로 묘사된 김지영씨의 고난에 아주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못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데부터 그녀와 나의 형편은 출발점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설과 영화가 묘사한, 그녀가 성장과정에서 겪은 성폭력의 기억에 대해서도 그랬다. 직간접적으로 겪은 끔찍한 기억은 ‘버스 안 성추행과 가족에 의한 2차 가해’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김지영씨가 경제적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묘사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원작 소설이 발표되어 인기를 얻을 때도 이런 목소리들이 많았다. ‘내가 더 불행했고, 내 친구는 더 아팠는데, 고작 이 정도로?’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고 그런 불만족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하지만 그런 불만족에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 켠은 불편했다. 더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이 덜 힘들게 사는 이의 아픔을 낮춰볼 이유가 되어도 좋은가 수도 없이 생각했다. 아주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이 시대 한국사회 여성인 김지영에 공감하며 원작을 눈물로 읽어냈다는 후기들도 외면할 생각이 없었다.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원작을 읽었고, 또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극장에 앉았다.


 영화를 보러갈 때 들고 갔던 의무감은 극장 바닥에 시원하게 내려놓고 나왔다. 공감하지 않았다면 울지도 못했을 테니 어쩌면 당연했다. 가장 크게 눈물샘이 터진 지점은 김지영씨와 그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가 동시에 이어지는 장면에서였다(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기로 한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라 무방비상태에서 당하고 말았다.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시절의 엄마를 떠올렸고, 엄마가 되기 전 한 여자의 삶을 상상했다. 한 사람이,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했을 것들을 짐작해보았다. 감독의 의도대로 기꺼이 ‘우리 엄마’를 떠올렸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고 있었다.


 벌게진 눈으로 고향의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엄마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마침 그날 엄마도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왔다고 했고,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울음이 터진 지점이 같았다. 엄마도 자기 엄마를 떠올리며 울었다고 했다. 자신이 포기한 것을 두고 터진 회한이 아니라, 엄마의 엄마 삶을 떠올리며 더 아팠다는 말에서 명치가 저렸다. 사는 지역과 세대가 달라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달라졌어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는지 모른다.



사진출처 -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이미지


 82년생 김지영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대단한 발견도 아니다. 그저, 여기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을 건네고 있을 뿐이다. 최공돌 할머니는 원래 최공돌 할머니였으나 스스로 써내려간 글자를 통해 자신을 끄집어내셨을 것이다. 원래 있는 것을 꺼내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낼 땐,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소소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주는 것, 내 가족과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한 번쯤 해 본다고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시도가 손해라고 느껴도, 기껏 영화 한 편 관람료만큼의 손해다(조조할인 또는 심야할인, 각종 카드할인 혜택을 받으면 그 손해는 더욱 줄어든다). <82년생 김지영>이 더 이상 성과 세대와 불행의 크기, 어떤 차이들을 대결하는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