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사하라 사막에 다녀왔습니다(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2-27 17:29
조회
804


이회림/ 00경찰서


 사하라에서의 사막 투어는 현지의 투어 회사를 통해 신청하여야 합니다.
 사하라는 모로코 마라케시 시내에서 8시간 정도 차로 이동을 하여야 갈 수 있기 때문에 차 안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독일인 대학생 커플, 미국인 커플, 이탈리아인 커플 이렇게 세 커플과 함께 차에 올랐습니다. 우리 팀 커플들은 모두 성격들이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라 차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베르베르인 투어 가이드 아저씨의 새된 목소리뿐이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척추라고 불리는 광활한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한 5시간 정도 지났을 때, 11세기에 건설된 베르베르인의 거주지 ‘아인트 밴 하두 성채’에 도착했습니다.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도시인데 그곳을 걷고 있노라니 제가 마치 미드 ‘왕좌의 게임’의 칼리시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왕좌의 게임’을 촬영하기도 하였답니다. 이외에도 영화 ‘글래디에이터’, ‘아라비아의 로렌스’, ‘인디아나 존스’ 등의 촬영지이기도 했습니다.


 성채 꼭대기로 올라가는 동안 베르베르인 노부부가 당나귀를 가운데 두고 서서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당나귀를 가리키며 일방적으로 할아버지를 향해 마구 화를 내시더니 휙 가버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머쓱하셨는지 말도 안 통하는 저에게 어깨를 으쓱하시면서 무슨 말을 하셨습니다. 뉘앙스로 추측컨대 ‘아휴~우리 마나님 잔소리에 진이 다 빠지네~ 별것도 아닌것 가지고..’ 뭐 이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가 너무 귀여워서 몰래 사진 한장 찍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인트 밴 하두’ 관광을 끝낸 후 다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어색함을 깨고 대화를 시작하였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독일 대학생 커플은 정말 수줍음이 많았고 이탈리아 커플은 서로에게 장난 잘 치는 알콩달콩 귀여운 커플이었습니다. 미국 커플은 마치 토크쇼의 사회자처럼 분위기를 이끌고 유머감각은 넘쳤습니다.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차로 3시간 정도를 달리니 길 한 가운데서 덩그러니 낙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들 처음으로 사막에 와 낙타를 타게 되니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낙타를 타고 또 2시간 정도 정처없이 가다보니 서서히 해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싶을 즈음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 반가웠습니다.
 숙소는 큰 텐트였고 안에 침대와 테이블이 있어 굉장히 아늑했습니다. 화장실과 욕실도 있었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다 같이 둘러 앉아 모로코 전통 민트차를 마시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땅거미지며 하늘이 어두워지자 한국에서는 희미하게 보이던 화성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흥분한 나머지 ‘Look! That is Mars’ 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평소 별보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저도 모르게 입이 트였는지 어느 때보다도 말이 많아졌습니다. 다들 제가 마구 감탄사를 내뱉어가며 이건 무슨자리, 저건 무슨자리 이러는 것을 보며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의외로 저보다는 별자리에 대해 모르고 있기에 자신감 넘치게 이 별, 저 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천체관측 동아리 회장 출신인데 이 정도는 해야겠지요?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8시부터 저는 별바라기답게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밤을 지샐 준비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입고 간 패딩점퍼가 침낭처럼 따뜻했기에 2월 초 사막의 밤은 그리 춥지 않았습니다. 사구 꼭대기에 올라가니 저처럼 별을 보러 온 커플들이 하나 둘 보였는데, 밤 10시경부터는 모두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커플들이 떠나고 나서는 오롯이 혼자 넓은 사구 꼭대기에 드러누워 별들이 고요히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아,,,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해서 연신 혼잣말로 ‘와. 이거 뭔데 진짜.. 와.. 이거 뭐야 진짜.. 이게 말이 되나,,’ 이러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아,, 좋다 너무 멋있다,, 이런 정도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말도 안되게 신비하고 아름다워서 그런 반응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사진 출처 - 필자


 사하라의 2월 밤,,
 서늘한 미풍이 느껴지는데 얼굴에 와 닿는 느낌은 부드럽고 달콤했습니다. 오리온자리가 제 얼굴 바로 옆에 누워서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존재감이란, 한국에서도 자주 보던 오리온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하라에서는 정말 큰 거인이 옆에 누워있는 것처럼 더 멋지고 든든했습니다. 이럴때 제가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마음도 생겼다가, ‘아니다,, 이런 순간에는 오롯이 혼자 즐기는 것이 가장 순수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했습니다. 나와 우주, 나와 별, 나와 달. 나와 내 몸 아래에 있는 모래의 촉감. 그리고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하기까지 했던 밤공기의 느낌... 그리고 밤의 소리.. 공기 속에 소리가 있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밤이 흐르고 공기가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별도 흐르고,, 이런 광경을 뭐라고 묘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을 만든 커다란 존재가 저에게 깜짝 선물을 주신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야~ 너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내가 니 마음 안다, 오늘은 너만을 위한 최고의 무대를 준비했으니 실컷 즐기렴. 자~ 여기!!’ 이러시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마주하고 거기에 몰입되어 있을 때는 우리 자신이 마치 현미경이 된 듯 시야가 좁아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어두운 오목거울로만 대상을 바라보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행, 특히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시작해서 망원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창한 표현으로는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의 전환인가요?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여행을 통해서 모르고 있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특히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 때는 의사선생님의 약 처방 보다도 대자연의 속삭임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여행이 최고의 특효약인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겪은 힘든 일들이 일단 여행의 세계로 들어오면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힘든 기억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지만, 불투명한 유리판을 앞에 몇 장 갖다 댄 것 처럼 약간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항상 숙제는 숙제로 남아있지만 여행을 통해서 확실히 전에 없던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여행가기 전과 후의 나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행은 여럿이 즐기는 목적으로 가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것은 혼자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혼행을 하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혼자 갔던 그 길을 다시 함께 가서 나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면 행복은 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여태껏 다닌 여행 중에서 사하라 사막에서 보낸 낮과 밤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사하라의 밤이 제 곁에 다가오는 듯합니다. 혹시 힘든 일이 있고 머리 속이 정리가 안되면 과감히 사막으로 떠나보십시오. 물론 사하라까지 가는 과정은 피곤할 수 있지만 사막에서의 낮과 밤은 모든 수고로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경험하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