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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 (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27 13:50
조회
1202


이동화/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활동가


 이라크에서의 경험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40일 만에 사담정권은 무너졌고 1년도 채 흐르지 않아 이라크 내부는 정치적, 지역적, 종파적 무장 세력에 의해 심각한 내전을 겪었다. 당시 현장에서 반전평화활동을 펼친 나는 현지인들마저 위험한 상황에서 활동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서 현지인들에게 일어났던 폭력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함께 겪었다. 학교도, 시장도, 집도, 어느 한 곳 안전하지 않았던 바그다드에서 사람들은 수십 년간 일구었던 삶의 터전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라크 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또는 주변국으로 이동하여 난민이 되었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힘겨운 난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같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오랜 기간 내전을 겪었던 예멘은 냉전시기를 거쳐 1994년 통일을 이뤘지만 내부의 다양한 무장 세력간 충돌로 끝없는 갈등과 폭력이 이어졌다. 2010년 중동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의 여파로 수많은 예멘 민중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했고 그 결과 33년간 이어온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예멘 내부의 정치적, 지역적, 종파적 무장 세력들이 득세하며 독재정권 이후의 예멘 과도정부를 위협했고 과도정부는 무능력했다. 2015년 이슬람 쉬아파 무장세력의 쿠데타로 예멘은 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에서 사우디와 이란정부의 개입, 아랍 주변국, 미국, 거기에 토착 무장 세력과 테러집단까지 가세하여 예멘 민중들에게 예멘은 말 그대로 생지옥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의 한 부자가 사우디 폭격기가 파괴한 건물 잔해를 지나고 있다.@Khaled Abdullah
사진 출처 - 나눔문화


 시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예멘 상황이지만 국제사회와 국제구호단체에 따르면 예멘 내전으로 인해 2015년 3월부터 2017년 말까지 민간인 13600명이 사망했고, 그 중 수천 명은 아이와 여성이다. 또한 예멘 전체 2800만 인구 중 2000만 명이 긴급식량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2017년 창궐한 콜레라로 90만 명이 감염되어 2100명이 사망했다. 예멘 내부의 난민은 200만 명에 달하고 해외로 탈출한 난민은 19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외부의 구호물품과 의약품 보급은 무장 세력에 의해 빈번히 가로막혀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멘인 500여명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최근 제주도에 도착했다. 중동에서의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으로 발전됐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소위 ‘잘 사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게 있다. 그건 ‘이슬람혐오’이다. 전체 예멘 난민 19만 명 중 0.02%인 500여명이 선택한 한국은 ‘피부와 문화가 다르고, 무슬림이고, 남자이며, 제주도까지 오는 비용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국민의 세금을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었다. 물론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적진 않지만 다수는 아니다.


 저 멀리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의 우리에게도 ‘인종차별’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를 통해 방문한 타국에서 동양인이기 때문에 영어나 현지어를 모르기 때문에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경험한 현지인의 차가운 시선과 무시의 언행, 심한 경우 차별까지, 굳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 입장에 놓인다면 불쾌한 느낌을 떨치긴 어렵다. 현재 한국사회가 예멘 난민 500명을 대하는 태도와, 우리가 느꼈고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인종차별의 태도가 무엇이 다른가?


 우리사회의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한국 정부는 난민심사를 서두른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정부의 결정을 미루어 보건데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될 확률은 극히 낮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난민신청인들에게 자신들의 박해와 공포를 스스로 증명하기를 강요하고 그게 안 될 경우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의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단계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나마 한국정부는 그동안 인도적 체류허가라는 옹색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정부가 그 결정을 내릴 리 만무하다. 한마디로 예멘에서 온 500여명의 난민신청자는 대부분 강제 추방되거나 자진출국을 종용당할 것이다.


 내전의 참상 속에서 삶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을 찾아온 예멘인들에게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많은 한국인들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지만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폭력과 공포 속에서 삶을 선택하여 여기까지 온 난민들이다. 우리에겐 이들을 조롱하고 차별할 자유와 권리 따윈 없다. 우리가 이들을 쫓아내고 안도감속에 만세를 외칠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해 온 이들에게 희망의 존재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