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강좌

[20070123]<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종교는 이슬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1-09 12:14
조회
145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종교는 이슬람"  '이찬수 대책위'의 두 번째 강연...
테러는 종교가 아니라 패권주의의 산물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300"] 지난 18일, '이찬수 대책위'로 열린 '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두 번째 강의에서 이희수 한양대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caption]

 

지난 18일 저녁 7시, '강남대 이찬수 교수 부당해직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아래 대책위) 주최로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에서 '이슬람의 이해와 종교간 대화 : 칼과 코란의 왜곡된 방정식'이란 주제로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강의가 진행됐다.

16일 열린 이찬수 교수의 '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강좌 1강에 이어 두 번째.

이 교수는 "신학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구상에서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종교를 고르라면 이슬람을 들겠다,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보다 더욱 가까운 종교다"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종교적으로 이슬람은 앞선 일신교(하느님을 받드는 종교)들의 기본적인 교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코란을 통해 전혀 새로운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줌으로써 기존의 교회와 교의를 압도했다"고 말했다.

이슬람은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 즉 아브라함부터 모세, 다윗 등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을 수용할뿐 아니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 또한 예언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차이가 있다면, 기독교가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는 반면, 이슬람은 예수의 신성을 거두고 그를 완전한 인격체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또 하나의 예언자로 규정한 것이다.

이 교수는,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서 언덕을 옮기기보다 언덕 앞으로 자신이 직접 걸어갔다는 무함마드의 기적에 대한 유명한 일화를 예를 들면서 "이슬람교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예언자로 추앙하는 무함마드도 신격화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무함마드는 절대자의 권능을 부여받은 신격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적 인간형'의 예언자이다.

평화와 상생 존중하는 이슬람


 이 교수는 "인류 역사상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 추악한 짓을 벌였던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정복방식엔 큰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들은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러나 1187년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도, 자신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기독교인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은 자는 재산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해줬으며, 정착하는 사람은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했다. 또한 그네들 종교의 성소마저도 훼손치 않고 보존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예루살렘은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운 1948년까지 상생과 평화의 상징으로 보존됐다.

이슬람 세계는 복잡하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용어로 정의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문화권에 비해 유독 잔인하다거나 종교적 강제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소수민족 간 문제는 실타래처럼 복잡한, 역사적인 원한관계로 얽혀 있다. 팔레스타인, 쿠르드족, 체첸, 발칸 지역의 코소보, 아프가니스탄의 소수민족 등 분쟁 유형은 너무도 다양하다.

다양한 분쟁의 근본 원인은 대부분 냉전체제가 끝난 뒤 지배민족에 맞서 싸운 소수민족의 독립 투쟁, 또는 반대로 소수민족에 대한 지배민족의 박해에서 찾을 수 있다. 허나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 안에는 영토와 석유라는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참여하는 강대국들은 개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용어를 내세우며, 이슬람 문화가 아직 미숙하며 개도되고 선도해야 할 문화라고 부당하게 강조한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나는 아직 인류를 위해 만들어지거나 계시가 내려진 어떤 종교에서도 폭력을 조장하거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도록 내버려두는 종교적 가르침을 보지 못했다"며 "많은 경우 갈등의 원인과 배경은 주로 침략자나 강자의 논리에 따라 조작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여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경우 진실을 들여다보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오해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칼과 코란'이란 명제와 함께 따라붙는,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다. 이 교수는 인류학자로서 25년간 중동을 다녔는데도, 단 한 번도 테러의 위협이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며 공포에 떠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 등 강대국들이 언론을 통해 만들어낸 일방적인 정보를 수용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일반 시민들도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이슬람 관련 소식을 전할 때 알 카에다, 하마스, 지하드, 헤즈볼라 등의 근본적인 차이를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폭력으로 얼룩진 테러라는 대명제에 묻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 중에서 실제 테러 단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는 오직 '알 카에다' 하나뿐이다.

헤즈볼라는 국민의 동의와 선거를 거친 레바논의 합법 정당이며,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집권당이다. 지하드는 말 그대로 어떤 특정의 조직이 아니라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표현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반대한다고 해서 이들을 테러조직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 왜곡이자 지식에 대한 도전"이라며, 테러를 조장하는 현지의 세력 관계를 엄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가 하면 테러, 내가 하면 자위권 행사?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500"] 이 교수는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말했다.[/caption]

 


이 교수는 "테러란 무장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향한 모든 폭력"이라고 정의한 뒤, 언론에서 '이슬람 국가들에서 테러 행위가 벌어진다'고 보도된 행위가 명백히 '테러'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들의 테러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성이나 정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대부분 침묵하고 있지만, 중동 자살폭탄 테러범들의 대부분은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라고 한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자신의 이웃과 가족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현실에서 공동체의 미래를 꿈꾸기 위한 절망적인 행위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국제법상 무장할 수 없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직접 제조한 조악한 폭탄을 자신의 몸에 감고 죽어가는 것뿐이다. 많은 남성 대학생들이 희생해 이제는 많은 여성 대학생들이 죽음의 길로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국가 권력이 '니가 하면 테러, 내가 하면 자위권 행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며 테러 근절을 위해서는 두 가지 테러, 즉 국가 테러와 자살폭탄테러를 동시에 비난하고 근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정보와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미국의 부당한 공격과 불공정한 이중 잣대, 그리고 자원의 약탈과 문명의 파괴에 맞서 저항하는 이슬람을 폭력적이고 잔인한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것에 자신도 모르는 새 동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교수는 "이슬람의 오늘은 '코란과 칼'이라는 위협의 시대라기보다 오히려 '미국이냐 칼이냐'를 강요받는 시대"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국제법을 어기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질서를 송두리째 짓밟으며 자행되는 미국의 횡포를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방관해야 하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현재 이슬람이 겪는 분쟁의 대부분 미국의 대중동전략이란 큰 흐름 속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와 관용으로 이슬람에 다가가야 할 때

이슬람 문화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적, 종교적 박해와 탄압을 단순히 이슬람교의 책임으로 매도할 수도, 이슬람만의 과제로 방치할 수도 없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주변 정세에 대한 통찰 없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끝으로 이 교수는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 문화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며 "종교는 삶의 순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문화로서 의미를 지녀야 하며, 서로 다름을 이유로 탄압과 박해를 정당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은 상대적 강자의 입장에 있는 서구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이 이해와 관용으로 이슬람에 다가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23일 세 번째 시간에는 한국종교의 문화를 탐색하는 이찬수 교수가 '文으로 化하다'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25일에는 윤영해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가 '불자는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가'를 주제로, 2월 6일에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똘레랑스의 의의와 종교적 관용'을 주제로 특강한다. 모든 강의의 개별 수강 신청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