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강좌

경찰과 시민운동가, 인권을 논하다 - 경찰 인권 캠프 (시민의신문, 05.05.0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3:55
조회
82
 

경찰 하면 지금도 ‘짭새’나 ‘프락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인권침해로 얼룩진 경찰역사를 지적하고 민중가수 이지상씨는 ‘민중가요’를 들려준다. 경찰관들을 앞에 두고 청산하지 못한 친일경찰 문제와 경찰이 저지른 민간인학살, 고문피해자 얘기가 주저 없이 나온다. 경찰들은 인권강좌를 듣고 ‘경찰과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인권연대와 함께 ‘공감, 그리고 실천을 위한 한걸음’을 주제로 경찰인권캠프를 열었다. 지난 2월 신설된 인권보호센터 소속 경찰관들이 인권교육을 받는 시간이었다. 경찰인권센터와 지방청 인권담당자 등 27명 전원이 경찰인권캠프에 참가했다.

2박3일 동안 △인권의 의의 △성적 소수자와 인권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 △한국경찰과 인권 △인권과 평화 △시민운동 △장애인과 인권 등 다양한 인권강좌가 이어졌으며 조별로 인권토론과 역할극 만들기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인권을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특히 한 채윤 성적소수자인권문화센터 부대표와 박숙경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장은 피해를 입어도 경찰서를 찾지 못하고 경찰수사 과정에서 잦은 불이익을 당하는 성적 소수자와 장애인들의 사례와 대안을 제시해 뜨거운 반응을 받기도 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역할변화를 경찰에 주문했다. “질서유지에서 새로운 차원의 인권보호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국가가 인민들을 감시했지만 이제는 소비자감시와 작업장감시같은 새로운 감시체제를 만들어내는 ‘돈’이 인권의 적”이라며 “경찰이 이에 따른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이 '시민운동의 성장과 변화' 강의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인권캠프 내내 강사들은 경찰에 따끔한 비판을 쏟아냈다. 오 국장은 경찰들에게 ‘상상력’과 ‘말’을 강조했다. “경찰이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을 못한다. 경찰총장만 ‘말’을 생산하고 일방적으로 유통된다.”

오 국장은 “경찰의 날 행사에 갔더니 빈자리가 생길까봐 예비인력을 동원하고 퇴장도 계급별로 했다”며 “빈자리가 생기면 왜 안되는지 바깥에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퇴장하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어제도 그렇게 했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도 “청장님 보시기에 좋은 사업, 센터장 보기에 좋은 사업만 하면 인권보호센터는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인권문화센터 부대표는 “몇년전 경찰이 동성애자 사이트에서 명단을 확보해 동성애자들을 모조리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아 회원탈퇴신청메일이 하루에도 수백개씩 오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경찰을 꺼리는 동성애자들은 피해를 입어도 경찰서를 찾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며 “동성애자는 경찰서비스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고 강조했다.

동성애자들이 경찰서를 꺼리는 것은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언행을 일삼는 경찰관이 적지 않고 수사상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한 부대표는 △개인정보 보호 △동성애자 인격존중 △공정한 수사를 당부했다.
솔직한 자기반성으로 충격 준 ‘역할극’

“옛날에는 경찰이와 국민이가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일본이가 와서 경찰이를 자기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60년 넘게 경찰이는 높으신 분들 말만 듣고 국민이를 때리고 괴롭혔습니다. 국민이는 외쳤습니다. ‘경찰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경찰이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찰이는 국민이에게 사과했습니다. 경찰이와 국민이는 다시 사이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그리고 국민이는 경찰이게 수사권을 선물로 주었답니다.”

경찰인권캠프 참가자들은 조별로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주제도 다양했다. ‘화장실 인권선언’을 발표한 조는 “여성과 남성 화장실 비율은 7:3으로 한다”고 선언했고 ‘여·남 인권선언’을 발표한 조는 “여성은 씩씩할 권리가 있고 남성은 울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인권선언은 ‘새로운 조직문화 실천을 위한 4.30 영월선언’이었다. 1조가 발표한 영월선언은 인권친화적인 경찰 만들기 위해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담은 것이었다.

제1조] 본 선언은 경찰내부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경찰상호간의 인격존중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행사도우미는 여경의 전유물이 아님을 확인한다. (남자도 섹시하다)
제3조] 결재자는 상시 결재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제4조] 하급자를 상급자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No More Angry)
제5조] 식사비를 강요하는 언행·몸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제6조] 초면에 반말은 그의 인격이다.
제7조] A급은 막내에게로!!!
제8조] 소신있는(오바하진 마라) 출퇴근을 체질화한다.
제9조] 일과 보수는 비례해야 한다. (수퍼맨과 원더우먼 강요 금지!)
제10조] 위 선언은 지금부터 시행한다.

경찰인권캠프의 백미는 조별로 선보인 역할극이었다. 경찰과 국민의 관계를 형상화한 한 역할극은 솔직한 자기반성을 담고 있었다. 물론 수사권조정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이라는 희망까지도.

역할극 시간에 한 조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패러디해 장애인인권을 다루었다. 전에는 영화에 나오듯이 욕설과 구타, 장애인 비하가 많았지만 이제는 장애인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사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과거 수사관행을 보여주는 장면은 너무나 실감나게 연기한 반면 ‘인권수사’를 보여주는 장면은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었다. ‘인권경찰’이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경찰 하면 지금도 ‘짭새’와 ‘프락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라면 2박3일에 걸친 경찰인권캠프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찰인권캠프가 ‘진주 목걸이를 한 돼지’가 될 지 ‘진주 귀고리 소녀’가 될지는 경찰 몫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인권캠프에서 일선 경찰들이 보여준 토론과 열의, 그리고 솔직함은 경찰에게 희망을 가져볼 만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사진제공=인권실천시민연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안재경 인권보호센터장

-인권보호센터는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갖고 있나.

△인권보호센터는 지난해 6월 신설된 피해자대책실에서 올해 2월 22일 확대개편된 조직이다. 범죄 피해자 인권대책과 경찰활동의 인권강화 두가지를 중점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겠다. 새로운 개혁 분야이고 경찰이 그동안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못써 정보가 부족하다. 시민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이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

-센터 설립 당시 경찰 분위기는 어땠나.

△모두들 필요성에 공감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경찰활동에서 인권침해 사례가 있을 경우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나.

△있다. 징계권은 없지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감찰을 의뢰할 수 있다. 제도 관련 권고는 인권수호위원회가 할 것이다. 지방청 차원에서는 시민인권보호단을 만들어 협력체계를 갖추었다.

-조직내 민주주의는 어떻게 확립할 생각인가.
△센터에 내부통신망을 만들어 활발한 토론을 전개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 의사결정에 경직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의사결정과 정책추진에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 한다.

-경찰은 인권보호수사준칙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현재 경찰활동 전반에 걸쳐 인권기준을 제시하는 경찰인권준칙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자료수집 단계이며 부서별 검토와 조율, 감수와 검증을 거쳐 6월쯤이면 초안이 나올 것이다.

-여전히 경찰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민단체가 적지 않다.

△많은 시민단체가 경찰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경찰도 시민단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서로 많이 만나 이해 폭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