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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사회> 어떤 만남 1 (이찬수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4:59
조회
428
이찬수 교수
두 종류의 차이
신학과 종교학을 함께 공부해온 나는 유일신 신앙과 다양한 종교 현상의 관계에 늘 관심이 있었다. 식구들이 밖으로 흩어져 저마다 고유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한 가족이라 불릴만한 어떤 점을 공유하고 있듯이, 더 나아가 인간 군상이 아무리 다양해도 인간은 인간이듯이, 다양한 종교 현상들 간에는 차별성도 있지만, 깊은 차원에서 유사성도 크다는 사실에 늘 마음이 끌렸다. 개성, 차이 등을 존중하는 시대이지만, 상대를 충분히 이해한 뒤 보게 되는 ‘차이’와 전혀 이해해 보지도 않은 채 겉만 보고 판단하는 ‘차이’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기에,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자가 상대방과의 조화, 관용으로 나타난다면, 후자는 무관심, 대립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종교들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이들 간 유사성을 보는 일은 종교들 간 갈등 요인이 잠재해있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불교로 인해 세계관의 확장과 심화를 경험한 내게는 더 그랬다.
사람을 죽이는 이
3년 전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고자 격식을 갖추어 불상 앞에 절했던 짧은 행위의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직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우상을 숭배한 나에 대해 학교 측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알려달라며 총장 앞으로 항의 공문을 보냈고, 교목실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 나의 강의를 제한시켜달라고 교무처에 요청했다. 그러다 일단 특별한 징계절차 없이 사태는 마무리된 듯 했지만, 수면 아래서 교목실은 나의 강의에 대해 일종의 ‘내사’를 했다. 그런 뒤 종교적 다양성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가르치던 내 강의가 기독교적 정체성을 흔들어놓는다며 내 강의를 제한시켜달라는 요청을 이미 학교 측에 몇 차례 올려놓고 있었다. 대학교회 담임목사가 학기 중에 느닷없이 교수로 임용되면서 다음 학기 내가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강의를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일도 생겨났다. 왜 이렇게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지, 그런 식의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일종의 종교적 살기(殺氣) 같은 것이 느껴졌다.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다 급기야 학교에서는 내용증명 우편물 한 통으로 간단하게 나에 대한 재임용 거부를 통보했다. 거기에는 ‘강의 중 창학 이념(기독교 정신, 홍익인간)에 적합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고 있어서 재임용할 수 없다’는 한 문장만 달랑 들어 있었다. 다른 것 전혀 없이 우편물 한 장으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가볍게 심판하는 그 무례함이 조직의 이름으로 버젓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겪으면서 정작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예수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실감나게 추측할 수도 있었다.
'기독교와 현대사회' 강좌 진행 모습
사람을 살리는 이
그 와중에 학교 밖 한 단체를 알게 되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그리고 이를 통해 연결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이름이야 진작에 들어보았지만, 이들과의 만남은 내게 남다르게 다가왔다. 어떻든 사회적 약자를 편드는 이들의 행위는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이권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이들도 뜻밖에 많다는 사실이 가슴 속에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7년여 진행해오던 교내 강의를 교외에서 풀어놓을 수도 있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