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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되는 방법(이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7-29 13:15
조회
1064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몇 달 전 한 정치인이 불교 행사에 참석하면서 합장과 반배 등의 불교 예법을 따르지 않아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 그의 사회적 위치와 행사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배타적이고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그러나 혹자는 자신의 종교적 지향을 밝히기를 몹시 원하며 이와 같은 행위가 자기 신념을 드러내는 절대적인 행동이 된다고 여길 수 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얼마 후,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기사를 접했다. 같은 정치인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나므로 당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입법에 나서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모국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하기 힘든 차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여러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주장하고자 했던 ‘기독교인’ 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졌다.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나의 신학적 지식으로는 전도사라는 그분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상식 수준에서 성경을 떠올려보면 함께 생각나는 단어가 우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 단어가 들어간 성경 구절을 찾아보니 여기에 다 적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신명기 10:18),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신명기14:29),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스가랴 7:10),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를 지켜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시편 146:8,9)


 나그네―외국인에 정확하게 대응한다―와 고아와 과부.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대명사다. 성경이 누구에게 마음을 쏟으며,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또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마태복음 22:39)’ 예수의 가르침은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아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는 경지의 Com-Passion을 요구하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1세기 로마와 유대인 사회에서의 분리와 차별이 예수 안에서 극복되었음을 선포한 구절도 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출처 - Daniel W. Erlander


 불교 예식 참여를 거부한 그의 행동을 두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라는 설명이 따라붙은 글을 여럿 보았다. 불교 예법을 거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공인임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존중과 예의의 표현을 거부할 정도로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응당 그 정체성의 실체도 보였어야 수긍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신자, 그리스도인 등으로 표현되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성경에 260번 이상 언급된 ‘제자’라고 한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아닌가. 신의 가르침인 성경에서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처지를 애달파하며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차별하지 말라는데, 그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만 해도 자신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