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서울에서 태어나는 거, 그거 진짜 좋은 스펙이더라(김창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7-12 15:00
조회
1092

김창용/ 회원칼럼니스트


 A(26)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지금은 동작구 흑석동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취업을 준비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제천에서 취업준비를 하고자 했으나, 3개월도 못가 다시 서울로 왔다. 공부하러 가방을 메고 나서면 보이는 건 산 뿐인 소도시이기에 스터디는 물론 취업과 관련된 정보도 구할 수 없고, 애초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죄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말했다.


 A와는 친한 동향친구다. 더불어 같은 전공을 했기에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한번은 그가 “3일 정도 네 방에서 묵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딱히 상관은 없어 이유를 물었고 그는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고향에 있었던 3개월 동안 A는 취업 준비를 위해 10회 이상, 즉 1달에 3회 이상 서울에 다녀갔다. A는 “제천에 교육이 있냐, 뭐가 있냐. 왕복하는 돈이면 (서울에서) 월세도 살 수 있는데... 서울살이 힘들어서 내려갔더니 엄마도 그럴 거면 서울로 올라가라고 닦달하더라.”라며 자조했다.


 그렇다고 서울에 올라오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B(27)는 경남 거창에서 올라와 현재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에서 노무사시험 준비를 한다. 고시촌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5평 남짓한 원룸에서 지내며 월 40만원을 낸다. 식비와 학원비, 교재비 등을 포함하면 월에 나가는 돈이 120만 원 정도다. B의 부모님은 자식의 서울 생활을 위해 최근 소유하고 있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다. 그는 “체류비가 만만치 않아 부모님에게 너무 죄송하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 서울에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대외활동과 인턴을 하기 위해 고시촌에서 1년 정도 지냈는데, B와는 그때 많이 친해졌다. 그는 어린 동생이 있다. 어림잡아 띠동갑이 넘는 나이차였는데, 그래도 집이 지방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때 학원비 등 교육비가 서울에 비해 적어 부모님이 느끼는 부담이 (서울에 비해)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데 그는 최근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란다. 힘들어하는 부모님이 계속 눈에 걸렸고 동생도 곧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인이 식비를 대폭 줄여가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런 가족을 외면하고 더 이상 서울에서 혼자 버티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지방 출신 청년의 입장에서 서울은 분명히 기회를 넓히기 좋다. 책이나 신문,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고, 정보는 흘러넘치며 강의를 듣거나 스터디를 하거나 모임 등을 할 때 공간의 제약도 사라진다. 하나마나한 말이겠지만, 지방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위해 지방 청년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당장 고향에서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들만 봐도, 서울에 한 번 왔다가는 데 드는 비용이 교육비를 포함하면 어림잡아도 최소 15만원은 넘게 든다고 한다. 게다가 면접 등을 포함하면 그 빈도는 잦아질 수밖에 없다. 15만원이면 2주에서 3주치 식비와도 비슷하고, (지방)월세의 반값도 넘는 돈이다. 누구는 쓰지 않아도 될, 혹은 교통비 2,500원만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지방 청년들은 그 60배인 15만원이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시간도 배 이상 투자해야 하는 건 덤이다.


 지방에서 지내지 않고 서울로 올라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방 출신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힘들다. 다른 동향 친구인 C(25)는 물리치료과를 졸업해 2차병원에서 일하며 2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다. 그 중 월세(50만원), 보증금 이자(10만원), 집에 보내는 돈(50만원), 저년차 치료사들에게 강제되는 세미나 비용(월 평균 10만원)을 제하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90만원이다.


 C는 “동기들은 입사 후 모은 돈으로 여름휴가 때 멀리는 못가도 동남아나 일본, 중국 등지를 다녀온다고 하던데, 진짜 속 쓰리지 않냐?”며 “90만원 중 식비, 통신비, 생필품비 등 고정지출을 제외하면 갖고 싶은 것 하나도 사지 않고 아끼고 아껴 월 30만원 저금할 수 있는데 동료들은 갖고 싶은 것 다 사고 저축할 거 다 저축하면서도 ‘돈이 모자라 동남아밖에 못 간다.’고 말하는데 당장 집 한 번 갔다 오기도 힘든 생각 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출처 - 대학내일 유튜브 영상 갈무리


 ‘서울 공화국’에서 지방 출신 청년들은 이주난민이 되어 배척당하고 쫓겨난다. 대학생 때는 각종 대외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지원자격 중 거주지를 수도권으로 한정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없다. 방값이 없어 학교나 직장과 먼 원룸, 반지하, 고시원으로 밀려난다. 취직 후에도 동기들이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살 때 외식 한 번도 신중히 생각하며 아껴도 늘 더 가난하다.


 쫓겨나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어렵다. 고향에는 기회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버텨야 한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꿈을 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꿈을 이루기가 힘들다. 같은 노력을 해도 늘 뒤쳐진다. 인구 밀집으로 인한 문제는 전부 청년 개개인이 지고 지방 청년들은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다.


 A는 만나기만 하면 “야, 우리 제천 가서 학원이나 하자. (제천에는) 학원도 없으니까 너랑 나랑 서울에서 대학 나온 애들 몇 모아서 제천 가면 학원 재벌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여기서처럼 밥 안 굶고, 월세도 안 살고, 갖고 싶은 것 사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수 있다.”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반은 진심인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일단 ‘그러자’고 대답은 하는데, 서울에서 자유롭게 꿈을 꿀 수는 없을까.


김창용: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