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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창용, 김치열, 이현종, 이희수, 정진이, 홍세화, 황은성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누군가 마음 편히 울 수 있도록(황은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7-01 16:21
조회
272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6월 13일 오후 전 노들야학 교사이자 지금은 작가가 된 홍은전씨의 강의를 들었다. 슬픔과 고통에 관한 강의였고, 강의 중간쯤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야하는 슬픔에 시달려 약해진 이들마저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운다는 것이 금지된 사회에서 기꺼이 슬픔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그 부조리에 ‘저항’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내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필자인 ‘나’는 아직까지, 여전히 슬픔 속에 살고 있어서 그랬다.


 필자의 슬픔을 고백하자면, 10살까지 함께했던 필자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였다. 알코올에 절여져 전두엽이 쪼그라든 아버지는 실로 무참한 폭력과 악의로 나의 인생을 짓밟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며 지옥 같은 여주를 탈출한 이후에도 필자는 내성적이고 왜소하며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과 세상에 상처받았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상처 준 모든 이들은 단 한 번의 사과 없이 무심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기에, 나에게는 씻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상처가 남았지만 그들은 무심히 웃으라기에…….


 악의가 낳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조리한 슬픔에 저항하는 방법 같은 건. 간혹 내게 행해진 과거의 폭력이 너무 아파서 깊은 밤 불면에 시달릴 때면 누구의 손을 부여잡고 과거를 털어놓거나 지난날의 상처를 드러냈지만 어차피 돌아오는 말들은 항상 똑같았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 “다 그러고들 살아”, “그거 보상심리야”, “잊어, 잊는 게 최고의 복수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언제까지 과거만 돌아보면서 살래” 모두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처럼 말했으니까. 나는 홀로 고개를 내저을 용기가 없어 끄덕였다.


 그것은 그저 ‘적응’과 ‘순응’이었다. 세상이 그러라고 했기에 그들 모두 그랬고 나 역시 그들과 똑같았다. 원망하고 미워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며 바꾸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은 계속 굳건하리라 믿었다. 실제로 정해진 관습이나 통념에는 적응이 더 편하니까. 누굴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내 마음 하나만 추스르고 ‘개인의 불운’이라고 말하며 방 안에서 훌쩍 울면 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두 ‘적응’이라는 과제를 두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니까. ‘적응’이라는 과제를 내놓는 세상은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미워하고 폄하 하니. 아스팔트보다 차가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만큼 살기위해 성격을 바꾸고 외모를 가꾸며 노력하며 살았지만 상처는 결코 치유는 될 수 없었다. 구멍이 난 마음 안에서 쉴 틈 없이 무엇인가 흘러나가는 영원한 결여에 시달리며 살았고, 추슬렀다.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게 물었고, 위로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던 나는 어느 날 기울어지는 배를 보았다.


 지옥보다 더한 그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304명이 덧없이 떠나버린 그 사건 이후로 남은 사람들을. 물가로 올라온 아이를 지퍼 백에 담아놓는 것을 보아도 혹여나 더 심하게 굴진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말하는 것 하나 조심하며 살아가는데도 슬프다고 말 할 권리조차, 기억할 수 있는 권리조차 앗아가 버리는 세상에. 애도를 청승이라고 말 하는 세상에. 그만하면 됐다는 세상에. 죽은 아이들을 찜쪄먹고 회쳐먹고 고아먹는다는 세상에. 추모시설을 두고 땅값 떨어뜨리는 혐오시설 납골당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저항을 유별과 유난으로 표기하며 “지겨워죽겠어 그냥.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 많은 보상금 받아놓고 부족하나보지?” 라고 말하는 세상에 상처받음에도 굳건히 두 발로 서고 묵묵히 내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어째서 저항할까. 누구 앞에서 슬프다고 말도 못 한 채. “그 이야기는 부끄러우니까 인터뷰에서 빼주세요.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빼주세요. 그런 얘기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으니까 빼주세요.” 라고 말하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광화문에 서고 잊지 말아달라고 촛불을 높이 들며 호소하는 이유를.


 나는 내 손을 부여잡으며 울어도 좋다고 말해주는 상담사의 말에도 울 수 없었으니까.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홍은전 작가의 말을 듣던 그 순간. 나는 이내 깨달았다. 나와 그들에게 삶의 흉터를 남긴 그 거대한 발톱은 ‘어쩔 수 없는 사건’ 이나 ‘개인의 불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그저 슬픔마저 통제하는 사회의 민낯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6월 13일의 며칠이 더 지나갔고 지금 칼럼을 쓰는 나는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지만 알고 있다. 진실을 심연 속에 묻어놓고 외면하며 사막같이 메마르고 있는 세상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남은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참사를 ‘인간 개인의 슬픔’으로 치부하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속에서 울지도 못 한 채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나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고 아버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원망하였지만, 어머니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다만 필자의 어머니가 “가족일은 가족끼리 해결하라”는 세상에 “오빠가 술만 먹으면 저러네, 평소에는 착하잖아. 동서가 좀 참아.”라고 말하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였다는 사실을.


사진 출처 - 필자


 하여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슬픔을 똑바로 마주하고 적응대신 저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마음을 털어놓고 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누군가 나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 편히 울 수 있도록. 언제인가 아버지가 있을 여주로 돌아간 내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그런 참극이나 슬픔이 일어나기 전에, 당신도 같이 저항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고. 나는 말 하고자한다.


황은성 :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배워가며 살아가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