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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팔랑귀의 단상(이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6-17 14:22
조회
955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소유하려는 일이 익숙한 세상이다.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건강, 명예, 재물 따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것들까지 가지려 한다. 행복한 순간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다며 곳곳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방대한 정보를 '담아'두기 위한 외장하드나 웹하드 역시 흔히 쓰인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은 기억을 불러올 뿐 기억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나부터가 종종 사진을 남겨두는 것이 기억해야 할 어떤 순간을 대체한다고 여겨버린다.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저장해 둔 파일과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채워놓은 책. 거기 담긴 지식이 내 것이 된 양 느끼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실제와는 다르다.


 내 것이 아닌데도 마치 내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또 있다. 그것은 '진리'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을, 나는 으레 보편타당한 법칙으로 생각해버리곤 한다. 다름을 인정하자,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교과서 속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긴 쉽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이나 누군가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은 전혀 별개로 작동한다. 그것이 주관적인 틀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당연한 것인 양 확고하게 말이다. 내가 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진리가 되고, 나는 진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나의 관점과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나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나에게 있어 종종 '모자란 사람', '이상한 사람', 나아가 '사람도 아닌 자'가 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라 탐구자일 뿐이다. 내가 지금 진리로 여기는 것은 최종적으로 진리라고 판명난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도중에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에 불과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공부한 지식인이나 많은 이들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라고 자기 생각의 완전무결한 무오를 주장할 수 있으랴마는, 피상적인 지식을 접해도 가장 먼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되는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심정적으로 너무나 진리임에 틀림없다고 여기게 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 정치, 종교적 신념이나 삶의 방향처럼 내 가치관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조차 옳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명한 사실을 일상에 적용하려 들면 새로운 어려움을 겪는다. 진리를 가진 게 아니라, 찾고 있을 뿐인 상태를 자각할수록 입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거칠게 말하면, 뭣도 모르고 떠들었다가 부끄러워질까봐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싶은 거다. 그래서 이미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생각들로 나도 모르게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할 때, 또 그런 결론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저어하게 될 때마다 생각하려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들을 더 많이 접한 뒤에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이 무엇일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편에 서주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 애쓰기. 가질 수 없는 진리를 구하는 나의 오늘자 임시 결론이다. 이 생각을 곱씹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노력의 일환으로 이 열린 인터넷 공간에 주절주절 글을 적게 되었다. 끄적여 둔 꼴을 되돌아보며 가까운 미래에 머리를 쥐어뜯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올리는 건 현재 나의 지향이 보편타당함을 확신해서가 아니라, 본성을 거슬러 노력하는 과정들이 모여 더 진리에 가까워져 가는 삶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