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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겁쟁이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지는 말자(김창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29 13:25
조회
729

김창용/ 회원칼럼니스트


 3명의 20대 여성이 비키니만 입고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운동을 통해 다져진 몸을 관객을 향해 뽐내듯 포즈를 잡는다. 피트니스 대회 얘기는 아니고 지난해 있었던 ‘비키니 위문공연’ 얘기다.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 또 다른 군 위문공연에서 카메라는 당연하다는 듯 여성 모델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클로즈업 해서 화면에 띄웠다. 참석자들은 환호했고 모델은 당황했다.


 상위부대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입장문을 내고 사과를 했음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과는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지속됐다. 올해 다녀온 예비군 훈련에서 있었던 일이다. 늘 있는 안보교육에는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가늠 할 수 없는 걸그룹의 ‘위문’ 영상이 등장했다. 헐벗은 여가수가 ‘예비군 오빠들 화이팅하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영상이었다. 도대체 이게 대한민국 안보와 무슨 상관일까 곰곰이 생각도 해봤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비판이 일었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위문공연을 폐지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흔히 하는 말로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 으레 남자들끼리만 모여 나누는 대화 중 유난히 이성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듣기 불편하다. ‘20대 남성들이 여자와 성에 대해 대화하는 게 뭐가 문제냐’, 혹은 ‘남성은 원래 이렇다 저렇다’라는 말들을 억지로 수용해 ‘그렇다더라’ 하고 이해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얘기들이 늘 오간다.


 ‘누가 예쁘다’, ‘누구는 어떻다’ 따위의 평가는 기본이다. 심지어 서로 아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몸매가 좋다’, ‘누구랑 잠자리를 했다.’ 등 적나라한 얘기가 끊임없이 오간다. 심지어 그 말들은 훈장이 되고 많은 여성을 만난 남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우에노 치즈코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에서도 언급했듯 너도나도 ‘호모 소셜(동성 사회, 남성 연대)’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남성성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객관화, 타자화되어 일종의 수집품이자 전리품이 된다. 대화에 동조하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드러내면 ‘고자’ 혹은 ‘게이’가 되기 십상이다.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가 또 다른 여성혐오로 번지는 식이다. 호모 소셜 속에서 ‘진짜 남자’가 되려면 여성을 타자화해야 한다.


 군대 밖에서도 이런데 안은 오죽할까. 군 생활 중 남성만 나오는 TV프로그램은 시청 금지였고 아침에는 인기 있는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항상 틀어둬야 했으며 여군에 대한 끊임없는 루머(주로 성적인)는 끝도 없이 생겨났다. 휴가를 나가서 여성을 만나지 않으면 욕을 먹었고, 만나지 않았다면 성매매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야 ‘고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SNS 상 여성 친구들은 ‘누구 친구가 예쁘다’ 식으로 리스트화되어 선임병들에게 전해졌다. 본인들의 마음에 드는 여성 지인이 있으면 A급 병사가 되었고, 그런 지인이 없다면 소위 폐급 병사가 됐다.


 뜻하지 않게 ‘고자’가 된 사람으로서 보기에,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시각은 호모 소셜 속에서 소외되기를 두려워하며 발현되기에 그 뿌리가 깊다. 그리고 이는 곧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남자들끼리 “진한 우정을 나누자”며 가진 술자리에서는 앉자마자 주변 여성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을 둘러보고 서로 평가를 한다. 그리고는 맘에 드는 상대에게 말을 건다. 그런 행동이 불편해 가겠다고 하면 ‘갈 거면 폭탄(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치우고 가라. 의리 없이 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등의 대답이 돌아온다.


 상황이 이러하니 위문공연을 폐지해 달라는 의견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뻔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위문공연 없으면 (군대 안에서) 뭘 보고 사냐’ 등 반대의견이 넘쳐났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반발은 더 커서, ‘남자들끼리 갇혀있는데 성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뭐가 문제냐’, ‘추행만 안하면 됐지’, ‘너희 같은 애들은 부르지도 않는다’ 등 성 상품화나 성적 대상화 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말들을 해댔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타인의, 특히 남성의 필요에 따라 규정되고 있다. 힘을 가진 남성들이 스스로는 오롯이 성적 주체이고자 하고, 객체가 되기 두려워하기에 그렇다. 치즈코는 “군대는 매우 중요한 호모 소셜이다. 한국 남성들은 군대에서 살생과 폭력을 배운다. 문제는 이런 작동원리를 적극적으로 배운 남성들은 평화적 생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에 더해 군대는 살생과 폭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것들은 통제하면서, 성적인 해소는 독려한다. 성욕의 노예로 여긴다는 의미다.


 비키니를 입고 자신의 몸을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드러내는 동생뻘 모델들을 대하는 태도는 환호가 아닌 좌절이고 반성이었어야 한다. 위문 공연을 유지하자는 주장은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해침은 물론 두려움 많은 겁쟁이이자 성욕의 노예임을 자백하는 모양이기에 더욱 그렇다. 스스로 겁쟁이나 노예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지는 말자.


김창용: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노력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