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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방패를 들자(최우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2-26 11:02
조회
979

최우식/회원 칼럼니스트


 2011년, 병역 거부에 대해서 잠시나마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는 무교다. 따라서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였으므로 질문은 단순했다.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전쟁이 발발한다면 나는 전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발목만 잡는 것은 아닐까.


 당시 나는 전쟁을 몇몇 위정자들의 욕심이 낳은 강요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역사책에서 배운 전쟁이란 으레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대다수 시민의 의지와는 동떨어진 그런 것 말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의사결정과정을 거처, 알지도 못하는 공간으로 끌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폭력 불복종으로 저항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군대에 갔다. 솔직한 말로 전쟁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군대에 가서 얻게 될 이익과 가지 않으므로 받게 될 불이익을 견주어 봤다. 내 목숨이 희생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지만 내가 병역거부로 받을 불이익은 벌써 눈에 보였다. 졸업하면 취업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고민은 그 성격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손쉽게 해결되었다.


 2년을 무사히 마치고 예비군 훈련에서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은 탓일까. 우리나라를 수호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본분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달라진 내 모습을 인정해달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2011년 어쩌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었던 그 순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반전 평화주의자 존 레논 (출처: 존 레논 페이스북)


 나는 지금까지 자신을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여기에는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않으면 ‘이상한 애’로 낙인찍는 사회의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의무를 방기하는 자신만 아는 애’라는 사회적 시선이 그 분위기 저변에 깔려있다. 국내 기업 입사지원서 대부분에는 복무기록 입력란이 있다. 군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업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혹시나 있을 병역거부자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반전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구 오천만의, 세계 경제순위 10위권의 국가에서 반전주의자 한 명을 보기 힘들다는 것은 어딘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마르크스가 노동자 해방을 외쳤던 것처럼 작금의 현실에서도 반전주의나 평화주의를 꿈꾸는 사람은 어딘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2001년 오태양 씨의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은 그것의 똑똑한 증언이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획일적인 평화관은 과연 ‘평화’라는 가치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오히려 평화라는 가치의 다양한 해석을 막고 다양한 논의의 싹을 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획일성은 휴전 상황에서 단일 대오로 국민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근현대사를 겪은 우리나라의 아픔은 평화라는 가치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휘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기존의 명칭을 ‘종교적 병역거부자’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의 신념을 검증하기 위해 총을 쏘는 FPS 게임의 접속 여부를 확인한다고 하니 그들의 상상력에 기가 찬다. 이제는 선천적 평화주의자와 후천적 평화주의자를 갈라서 전자만을 인정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들어 ‘한 전장에서의 승리는 다른 전장에서의 패배로 수포가 된다.’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판결 이후 우리는 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후퇴하는 것일까. 일부는 병역을 피하는 영악함을 걱정하지만 정말로 영악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감당하려고 할까? 어불성설이다.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끝에 일보를 전진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공간을 이만큼 열어줬으니 어디 한번 이용해봐 라며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회가 아니라, 이만큼 문이 열렸으니 그대가 해당한다면 지켜주겠다고 방패를 들어주는 사회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방패를 들자.


최우식 :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피디 지망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