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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생각의 사이 (박선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1-06 18:01
조회
47


박선영/ 회원 칼럼니스트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하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권력과/돈과/착취와/형무소와/폐허와/공해와/농약과/억압과/통계가
남을 뿐이다.
김광규, <생각의 사이>


 나는 무엇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사회에서 정해지는 그 사람의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우리 사회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여러 정체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이고, 무산계급의 딸이고, 교육 노동자이고,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인 내가 서 있는 위치, 그 자리에서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타인과 구분되는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상대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억압과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문제 앞에서는 여성으로서 성평등을 생각했고, 또 노동자로서는 노동권을 생각했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은 가운데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권리’일 것이다. 인간이 지난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쟁취한 ‘인권’이라는 발명은 한 인간이 빼앗긴 힘을 되찾아준다. 그래서 세상이 고통스러울수록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거리로 나와서 모이고, 외치고, 길을 막고, 관심과 연대를 요청한다. 누구나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각자의 권리는 경합하고 갈등한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세상에는 문제가 너무 많고, 오늘은 누가,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어려움을 말한다. 권리는 항상 침해당할 때 드러난다. 인권은 인간이 고통 받을 때 소환된다. 그래서 인권이 자꾸 등장할수록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관심을 갖기가 부담스럽고,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나의 문제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여성, 20대, 무산계급 노동자, 비혼주의자의 위치는 나를 힘들게 하는 다양한 이유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많다고 해서 고통이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동자여서 겪는 문제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또 다른 성격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고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교사로서의 나는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에 서서 권력을 행사한다. 


 나를 관통하는 억압의 축이 교차하고, 동시에 타인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나는 여성의 자리에서 교육 노동자의 자리에서 나의 고통을 호소하고 권리를 주장하기에도 바쁘고 벅차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사로서 학생 인권도 말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그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약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였을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을까.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방법을 몰랐고 그러한 역량도 없었다. 단지 그냥 잠깐의 연민이나 공감으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난민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보냈던 것 같다.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드니까 서로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는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끝까지 지속할 수도 없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여성이 겪는 문제를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만 이해할 때 그 사이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다. 일회용 생리대의 발암 물질이 문제가 되었을 때 여성의 건강만을 생각했기에 여성 소비자들이 대안 생리대를 이용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일회용 생리대의 사용으로 오염된 환경, 일회용 생리대를 생산하며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들, 대안 생리대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 여성은 그 사이로 빠져나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 너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쉽다. 사실 하나만 생각하기도 벅차다. 하지만 우리를 고통 받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일부의 의도와 이익을 위해 다층적인 위계를 만들어 유지된다. 그래서 나 혼자만 생각해서는 역부족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언어로 말하고 싸워가야겠지만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관점을 확장해야 한다. 관점을 확장하면 나와 연결된 타자가 보인다. 이때 우리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책무성을 띤 부담스러운 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연대가 시작된다.
 
 여성만 살기 좋은 세상이 있을까? 노동자만 살기 좋은 세상이 있을까? 그런 세상을 상상한다면 여성 안의 수많은 차이, 노동자 안의 수많은 차이가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한 개인이 세상의 모든 차이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 나는 모든 자리에 있을 수 없다. 페미니즘은 세상을 구하지 못 한다. 그래서 그 사이를 메워줄 타인의 존재가 절실하다. 처음에는 페미니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페미니즘의 완전하지 않음 덕분에, 내 경험과 지식의 한계 덕분에 타자와 더 잘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생각의 사이’를 채워갈 것이다.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