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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내 번호는(조소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29 14:21
조회
66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올해 3월 대학원에 입학해서 새로운 학생증이 나왔다. 그동안 직장인으로서는 받지 못했던 각종 학생 할인 생각에 들떠서 학생증을 보다가 내 사진과 이름, 그 아래에 적힌 열 자리 학번이 눈에 띄었다. 첫 네 자리 숫자는 2018 나의 입학연도이고, 그다음 세 자리는 학과 고유번호, 그리고 마지막 세 자리 숫자는 친구들과 비교해보니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해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학생증을 길에서 발견했을 경우를 상상해보았다. 사진이 있으니 내 얼굴과 이름은 물론이고 입학 연도로 내 나이대도 대충 추측할 수 있고, 학과번호를 보면 내가 주로 학교 내 어떤 건물에서 생활하는지도 다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학생증에 있는 이 정도 정보 노출로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미 이것보다 더 심한 정보 노출이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출생신고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번호를 강제적으로 부여받는다. 주민등록번호 첫 여섯 자리는 생년월일이고 그다음 한 자리가 성별인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다음 세 자리가 출생지 고유번호인 것은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개인정보 유출 뉴스에 ‘개나 소나’ 다 안다는 주민등록번호이지만,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나이, 생일, 성별 그리고 출생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게 썩 유쾌하진 않다.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술집에서 나이 검사를 할 때,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때. 우린 거의 매일 고유번호 공개를 강요받는다. 내 나이, 고향, 전공이 너무나 당연히 낯선 사람들에게 까발려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당연히 심각한 정보권 침해이다.


 우리에게 붙여지는 고유번호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정보유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도입부분이 기억이 나는가? 죄수들 몇천명이 밧줄로 프랑스 전열함을 끌고 있다. 교도관 자베르는 “죄수 24601, 고개를 숙여”라며 장 발장에게 노역을 강요한다. 장 발장은 “내 이름은 장 발장이에요”라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자베르는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이렇게 사람을 번호로 지칭하는 장면은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취급되는지를 보여준다. ‘번호’라는 단어의 한자 뜻을 풀이하면 ‘차례로 외친다’가 된다. 번호는 아무 의미 없이 1번 다음엔 2번, 그 다음엔 3번, 이렇게 기계적으로 차례차례 붙여진다. 그래서 번호는 그 사람의 삶과 개성을 하나도 담아내지 못한다.



사진 출처 -  YTN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자주 번호를 부여받았다. 태어나자마자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초, 중, 고등학교 시절 12년 내내 ‘몇 학년 몇 반 몇 번 누구’라고 불리었고 그리고 대학교 학번까지. 우리는 매년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고유번호를 부여받으면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었다. 번호가 붙는 일이 너무 잦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이름의 일부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오늘도 나는 내 학생증만 여러 곳에 보여주고 다니면서 ‘00대학교 00학과의 00번째 학생’으로 살고 있다.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