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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아무도 아프지 않은 학교 (박선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8-06 14:41
조회
248

박선영/ 회원 칼럼니스트


 <감기 걸린 물고기>라는 동화책에는 배고픈 아귀와 알록달록하고 조그마한 물고기 떼가 등장한다. 아귀는 물고기 떼를 잡아먹고 싶어 하지만, 물고기 떼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똘똘 뭉쳐서 아귀보다도 훨씬 커다란 무리로 헤엄쳐 다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물고기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던 아귀는 물풀 사이에 숨어 조그만 목소리로 소문을 낸다. “얘들아,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 물고기 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지만 아귀는 포기하지 않는다. 빨간 물고기는 열이 나서 빨개진 거라고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소문은 조심스럽게 무리 속을 파고든다. 그 뒤로는 물고기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부풀려지고, 확신을 불러오는 단계까지 이른다. 결국 무리에서 쫓겨난 빨간 물고기들은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던 아귀에 잡아먹힌다. 빨간 물고기를 먹어치운 아귀는 또 다시 소문을 흘린다. “얘들아, 노란 물고기도 감기에 걸렸대. 그새 옮았다는 구나!” 이제 물고기 떼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의심한다. 다른 색깔의 물고기들도 차례로 쫓겨난다.


 성소수자는 아프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빨간 물고기’다. 반동성애 진영은 동성애가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염’되기도 하고, ‘치료’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편견과 배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팀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성소수자 자살예방프로젝트 마음연결’과 함께 진행한 연구(만 19세 이상 한국의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2,341명 대상)에서 성소수자가 비성소수자에 비해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한 비율이 10배에 가까운 것으로 집계됐다. 성소수자의 우울증상 역시, 비성소수자에 비해 약 다섯 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류 문화 구성원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란 두려움도 성소수자의 자살 충동 증가로 이어졌다. ‘고용주는 성소수자를 뽑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등 일반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을 배제할 것이라고 예상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 생각을 두 배 가까이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섭 교수는 “결국 동성애자여서 아픈 게 아니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도 아귀가 있다.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비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보다 5배나 높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 내 성소수자 응답자의 80%가 교사로부터 혐오표현을 들었고, 54.4%는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험은 스트레스, 학업의욕 저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학교와 교사는 무엇을 했을까?  ‘동성애반대 교사연합’이라는 이름의 교사들은 세계 에이즈의 날(12월 1일)에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내용의 계기교육(공식적인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을 가르치는 수업)을 했다. 동성끼리의 성관계는 불결한 성관계이기 때문에 동성애로부터 학생들을 지켜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감염률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HIV 감염 역학은 국가마다 다르다. 바이러스가 성별이나 정체성을 가려서 감염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남성 동성애자가 감염의 원인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UNAIDS(유엔에이즈)는 ‘누구도 빠짐없이 인권과 성평등이 보장되는 사회적 조건이 되어야 에이즈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세계 에이즈의 날, 어느 학교의 학생들은 ‘감기 걸린 물고기’에 대한 소문이 진실이라고 배웠다.



사진 출처 - 필자


 지난 7월 14일 서울광장에서 19번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내가 활동하는 전교조 여성위원회에서 처음으로 부스를 운영했다. 뜨거웠던 그 날, 참가자들은 뙤약볕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학교, 페미니스트 교사를 응원하는 글귀를 멋진 그림을 곁들여 써주었다.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더 감동을 받았다.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1년에 한 번, 성소수자들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그들이 차별에 맞서는 방식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매년 늘어나 올해는 10만에 육박했다. 이 축제 시기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나는 교사들을 위한 가이드북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를 발간했다. 가이드북 소개를 하는 인터뷰에 교사들이 익명으로 참여했다. 기사에는 천 건이 넘는 악플이 달렸다. 몇몇 교사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들의 노력은 그저 ‘용기’있는 행동정도로 치부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어 손가락질 당하기 일쑤다.



사진 출처 - 필자


 성소수자여서 아픈 게 아니다. 사회의 낙인과 차별이 그들을 아프게 만든다. <감기 걸린 물고기>의 아귀는 물고기 떼들의 연대를 깨뜨리기 위해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두려움은 진실을 가렸고, 물고기 사회는 산산조각이 났다. 앞서 소개한 가이드북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당장 혐오를 멈춰 달라’고 했다. 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곳인가? 우리 사회가 아무리 아귀의 소문에 휘둘려 특정 집단을 배제시키고 있어도 학교는 모두에게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학교의 존재 이유는 어느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소수자가 ‘안전한’, ‘차별받지 않는’ 학교는 너무 소극적인 목표이다. 학교는 배움의 권리를 가진 모두에게 즐거운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색깔은 병이 아니고, 죄가 아니다. 일부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교는 이제 아프지 않은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혐오에 휘둘리지 않는 곳으로. 아무도 아프지 않은 곳으로.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