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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타자에게 내어주는 마음의 자리, 환대 (김현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7-16 14:00
조회
182


김현진/ 회원 칼럼니스트


 2015년 9월, 세계인을 부끄럽게, 놀라게, 아니 어떠한 단어로도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쓸쓸함’이란 단어가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만 3세였던 시리아의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 사진이었다.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몸은 역설적이게도 위험천만한 고무 보트에, 막연하게 살 수만 있다면 이라는 절박함으로 몸을 아니, 목숨을 싣는 난민들의 실상을 우리 사회가 알게 했다는 면에선 긍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발견된 터키 보드룸 해안가에 조화가 놓여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 과연 난민이 있을까? 있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난민으로 인정 받는 것이 가능할까? 에 대한 놀라운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우리 곁의 난민 –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 이다. 저자 문경란은 난민으로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 난민 7인의 삶을 책으로 풀어냈다. 여성 난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한국의 난민 관련 제도에 대하여 쉽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게 잔상이 남도록 이야기를 풀어간다.


 보통 어느 사회나 국가에서든 여성은 ‘상대적’ 약자이다(이 부분에 대한 이견은 차치하고) 게다가 여성이면서 난민이라면 가장 약한 자들일 것이다. 7인의 여성 난민은 누구도 자신이 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모두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 의해 난민이 되었고 난민으로 인정 받기 가장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나름의 삶을 힘겹고 위태롭게 버텨가고 있다.


 난민으로 살아가는 데에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말(김현경, 2015, <사람,장소,환대>)’인데 난민은 타국에서 특히 한국에서 자기 자리를 얻는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 자기 자리가 없기에 삶 자체가 삶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곧 삶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난민 심사 결과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 삶은 더욱 힘겹다. 영원히 떠도는 부평초처럼 살아야 한다. 휩쓸리는 존재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사회 안에 자기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난민은 사회 바깥의 존재요 추방된 존재다.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박탈된 존재다. 패터 비에리는 ‘권리란 전횡에 의한 종속에 맞서는 성벽과 같다’(비에리, 2014, <삶의 격: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고 했다”


 난민 혹은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모멸감에 빠지고, 자기 삶이 파괴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기 자리를 인정 받는 것’이 아닐까 하며 책을 덮는다.
 
 자기 자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법적인 문제로 들어온다면 ‘시민권’일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국제 난민 협약] 등 법적인 장치들은 이미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자기 자리는, 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이전에 이미 여기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우리가 내어줄  마음의 자리가 아닐까 싶다. 그가 흑인이건 이슬람이건 이주여성이건 소수자이건 간에 최소한의 삶을 이어가게끔 하는 데에는 시민권 이전에 우리가 내어줄 마음의 자리일 것이다. 그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서는 시민권을 부여한다 해도 그들이 투명인간 취급당할 위험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예맨 난민 문제로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접해본 그리고 겪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범, 스마트폰을 쓰는데 난민 신청한 이상한 사람, 예비 강간범 등의 이미지를 덮어 씌우며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겪어 보지 못한 타인의 자기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가 아닐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파괴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언제쯤이면 예맨 난민에게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타자에게 마음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내어주는 환대를 우리는 베풀 수 있을까?


김현진 : 18년 간 국어교사로 살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어서 직업을 바꾼 철들기 싫은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