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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만난 가족의 의미 (서진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4-10 11:38
조회
1171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오랫동안 못 본 가족들을, 취업하면 또 언제 볼까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또, 바닷가에서 제철을 맞은 방어도 먹으며 식도락 여행도 겸할 심산이었다. 테마도 있고, 먹는 맛도 있고, 반갑게 만날 가족도 있으니 값진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부산을 시작으로 순천, 광주를 거쳐 돌아오는 계획을 짰다.



#부산
 첫째 사촌형은 결혼 전보다 살이 많이 불어 있었다. 형은 갓 돌이 지난 조카를 처음으로 보여줬다. 자신을 닮아 장군감이라고 이야기하는 형의 얼굴엔 봄꽃처럼 밝고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들자랑이 끝나자 형은 방어가 제철이라며 집근처 횟집으로 안내했다. 활어회와 마시는 술에 취하는 줄도 모르게 술병은 쌓여만 갔다. 그러다 최고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한 축구선수 호날두에 자신을 비유하며, 새 직장을 자랑하던 형의 안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갓 아빠가 됐는데, 왜 할아버지 역할까지 해야 할까”. 대학 졸업 직후 대기업에 입사한 형은 돌아가신 큰아빠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형이 처음으로 푸념을 뱉어냈다. 그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항상 당당하고 모든 걸 아는 것 같아 보였던 형의 처진 어깨가 안쓰러웠다. 다음 날 새벽출근인 형을 위해 자리를 일찍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조카를 재우고 있던 형수의 몰골은 무너지기 직전이었지만 조카를 보는 눈만은 반짝였다. 마치 형과 형수의 삶은 조카의 그림자 같았다.


#순천
 갓 취업한 둘째 사촌형을 만났다. 형은 호기롭게 “첫 월급 탔는데 먹고 싶은 거 다 먹자”며 위대(大)한 나의 식성을 자극했다. 나는 순천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 집을 찾아내고 말았다. 메뉴판을 보고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도 취업하면 한 턱 내지, 뭐’라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죄책감을 물리쳤다. 고기를 먹으며 사촌형의 첫 직장생활을 물어봤다. “취업하니깐 좋아?”. 사촌형은 말없이 소주만 삼켰다. 약간은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사촌형의 입이 열렸다. “내가 이러려고 취직한 건지 모르겠다”. 사정을 들어보니 형은 ‘쓰레기(담당)’로 불리고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형의 첫 업무는 쓰레기 관련 민원처리였다. 매일같이 ‘쓰레기’로 불리며 쓰레기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게 형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기대했던 직장생활과 너무 달라서 괴롭다고 했다. 형의 긴 수험생활의 끝이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술을 잘 못 먹는 형은 그날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웃음인지 슬픔인지를 건네며 내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깐 좋다, 진석아”


#광주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잠시 작은아빠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의 모습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작은아빠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교통비 이상의 ‘차비’를 주시며 별로 잘날 것도 없는 조카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준다. 그런 작은아빠는 사실 정만큼이나 아픔도 많다. 술에 취할 때면 종종 불쑥 화를 내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오래 다닌 직장에서 잘리고, 외숙모가 떠나자 작은아빠는 지금처럼 약해져버렸다. 그는 항상 웃어주며 “우리 멋진 조카”를 외쳤었는데. 지금은 많이 야위었다. 아마도 그래서 비싼 옷과 세련된 머리스타일을 고집하는 지도 모른다. 광주를 떠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행 중 처음으로 후회했다. 차마 드리지 못한, “작은아빠, 건강 생각하셔서 약주 좀 줄이셔요”라는 말이 허공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한 명씩 떠올랐다. 새로운 가족을 꾸려나가는 형,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형, 세월의 풍파로 생기를 잃어가는 작은 아빠. 가족은 무엇일까. 창가에 비친 내 얼굴에 질문을 던지니, 가족들의 웃음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봐서 좋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차비로 써라, 그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가족을 꾸리는 건 삶의 주어가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과정일 것이다. 나의 행복이 최우선이었던 모습은 과거로 남겨두고, 나는 잠시 희생되기도 한다. 자식의 웃음, 동생의 성장, 형의 아픔이 한 데 어우러져 우리라는 단위로 공유된다. 못난 모습에도 잠시 기다려주고, 힘들 때 위로를 건네고,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 여기엔 어떤 조건도 부담감도 없다. 그저 가족이기만 하면 된다. 가족이 주는 조건 없는 위로는 하루를 버티고 새로운 날을 만들어갈 힘을 준다. 바로 이런 힘이 ‘비혼’과 다양한 가족형태가 등장 하는 사회 속에서도, ‘가족’을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로 유지시키는 게 아닐까. 비록 가족이라는 이름과 형태가 바뀔 지라도 말이다. 여행과 가족의 의미를 정리하니,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가족들이 벌써부터 보고 싶어진다.


서진석 : 기자가 되기 위해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