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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광야에서 (서동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9-27 11:24
조회
601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더위가 한창이던 7월과 8월의 경계에 북간도와 만주를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심양으로 출국하여 2주에 걸쳐 창춘, 옌지, 하얼빈에서 하이라얼의 만주 벌판과 베이징까지 돌아보았다. 대기업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 우연히 참석하였고, 중국 대륙을 처음 마주한 필자로서는 쉽게 여행을 다녀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인 행사였기에 방문한 장소들에서의 보고 느낀 풍경들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여행을 떠나며 작은 출판사의 초판본 육사시집 한권을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동주가 여행의 주요한 동반자였지만 육사의 시와 질문들이 북방이라는 지역과 마주하며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룽징의 용정중학교와 명동촌, 하이라얼로 떠나는 야간열차와 만주의 게르에서 동주와 육사의 시를 다시 읽었다. 광야의 매운 눈보라에도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던 육사,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웠으나 한 점 부끄럼 없이 주어진 길을 걸어가던 동주를 친구이자 선배, 선생으로 삼아 여행을 다녀왔다.


  둘을 동반자로 삼으니 대륙의 풍경들이 그저 평범하게 스쳐지지 않았다. 수많은 투사(鬪士)와 지사(志士)들이 목을 걸고 싸우며, 뜻을 품고 길을 모색하던 한복판에 내가 서있음이 번뜩 떠오르곤 하였다. 일제에 의해 수많은 조선과 중국의 민중들의 삶이 유린되었고, 그에 맞서 각자조국의 진로를 고민하던 선비들이 있던 땅. 내가 선 곳은 창과 방패가 쉴 틈 없이 부딪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북방의 넓은 벌판을 걸었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날 듯, 망망하게 펼쳐진 광야에 처음 발을 디뎠다. 왠지 모를 의무감에 이어폰을 꽂아 ‘광야에서’를 들으며, 초원을 걸었다. 오래전부터 찬 겨울 툰드라에 싹을 틔우는 잔디들 위에. 맘모스가 뛰놀았다는 초원 위에. 광야를 정복하겠다고 말을 달리던 칸이 지나간 자리에 지금은 말을 치고 양을 치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20170905web01.jpg


  하얼빈에서 만주리로 가는 열차에서 바라본 초원
  사진 출처 - 필자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시인들은 시를 적던 시점을 많이들 남겨두었다. 스물 세 해를 헐떡이며 커왔다는 서정주부터, 참회를 적으며 만이십사년일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의 기쁨이 무엇이었던지 돌아보던 윤동주까지. 나는 몇 해 몇 개월쯤을 살아왔나 꼽아보며 나는 무얼 바라 살아왔는지, 무얼 바라 살아야할지 물었다. 오래된 질문들이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질문들과 흐릿한 답변 사이에서 헤매다보니 어느새 다시 일상이다.


  광야를 걸으면 슬그머니 어떤 해답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물론 그런 것은 없었다. 답이 없을 질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을 버리지 않고 우선 주어진 길을 최선으로 걷는 것 일 터이니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뒤를 좇으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고마운 당신에게도 오래된 질문이 이어질까? 언젠가 나의 흐릿한 답변과 당신의 이야기들이 함께 만나는 순간을 기대한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