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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그리고 <눈길> (박꽃)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34
조회
376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영화 <레미제라블>(2012)에서 주인공 판틴(앤 해서웨이)을 가장 괴롭힌 사람은 누구일까? 많은 이들이 그녀가 일하는 공장의 작업반장을 떠올릴 것이다. 지독한 입냄새를 풍기며 판틴을 매일같이 성희롱하다가, 그녀에게 숨겨둔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이런 요망한 년, 당장 여길 떠나!”라고 외치는 그 사람 말이다.


진짜 그럴까? 어느 정도 그렇기는 하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생계를 위협받고 결국 매춘까지 하게 된 건 일자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작업반장은 판틴을 희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를 마음대로 해고 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다. 신사적인 태도로 “여기는 서커스장이 아니니 조용히 해결하시오”라는 한 마디를 뱉고 홀연히 제 볼일을 보러 사라진 사장, 장발장(휴 잭맨)의 허락 없이는 말이다. 판틴을 궁지로 몰아넣은 데에는 사장, 작업반장, 노동자로 이어지는 서열 구조가 있다. 작업반장은 사장의 경영철학을 따르는 임금노동자 즉 부역자이며, 서열 구조를 설계한 진짜 범인은 사장 장발장이다.


20170302web01.jpg<레미제라블>(2012)의 판틴(앤 해서웨이)
사진 출처 - 무비스트


서열 구조의 가장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구조가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간단하다.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이 클수록 더 그렇다. 대형 보험사의 설계사로 일하는 나의 엄마는 그래서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사장보다, 같은 사무공간에서 군림하는 팀장을 더 싫어한다. 매일같이 자기 하루에 침투해 실적 압박을 주고, 내키는 대로 퇴근 시간을 늦춰버리는 그 사람 말이다. 당사자에게는 피부로 느껴지는 자기 현실이 가장 힘이 세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사자 아닌 제3자는 상황을 보다 구조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의 사실을 보고 상황 전부를 오독하게 된다. 박유하 씨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그런 문제를 안고 있다. 박유하 씨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남긴 몇 가지 기록을 근거로 들며 그녀들이 일본군보다 조선인 업주를 더 싫어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일부 사실일 수 있다. 매일같이 자신의 일과를 감시하고, 성 노동을 강요하며, 임신하면 낙태를 시키는 조선인 업주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증명하는 것은 조선인 업주 역시 일본 제국주의라는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20170302web02.jpg <눈길>(2015)의 위안부 소녀 김향기, 김새론
사진 출처 - 무비스트


3월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눈길>은 그런 오독 없이 일본군 성 노예의 참상을 전한다. 일본 제국주의, 일본군, 조선인 업주, 위안부로 이어지는 서열 구조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화법으로 피해자를 보듬는다. 특히 영화는 일부 일본군도 구조의 피해자로 묘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피해 받은 위안부의 역사를 오독하지 않는다. 최근 명예훼손 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 하 씨에게 이 영화 관람을 권한다.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취재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