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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답을 할 때 (이빛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59
조회
301

-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이빛나/ 청년 칼럼니스트


광장에 나왔다. 서울 시청 앞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버스 안에서 벨을 누르고 거리를 살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잰걸음에 나도 마음이 바빠졌다. 4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광화문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행진을 시작하자 사람은 더 불어났다. 많은 인파의 이동으로 도로에 갇힌 차들도 눈에 띄었다. 운전자들은 짜증내기는커녕 집회 참가자들의 구호에 맞춰 경적을 울리며 응원을 보냈다. 분노보다 슬픔이, 질문보다 염증이 커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나와라_최순실’을 외치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대답 없는 정부를 향해 직접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지난 29일에 이어 일주일 만에 인파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주최 측 추산 20만 명, 경찰 추산 4만5000명)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부터 아이와 함께 나온 부부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세대를 가로질러 청계 광장으로 쏟아졌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피켓에 적힌 글귀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글귀가 있었다. ‘이게_나라냐’


20161108web03.jpg사진 출처 - 필자


국가란 무엇인가? 세월호 사건 이후로 반복돼 온 물음이다. 비선 실세라 불리는 최순실이 등장하면서 이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국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물음이었다면 이제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됐다. 사전 집회 성격이었던 지난 10월 29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외침이 오늘도 계속됐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던 국가의 구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종 비리 스캔들과 국회의 충돌을 지켜보면서도 국민은 옳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피로 이룬 민주주의 체제 국가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의견이 다르고 인물이 바뀌어도 자유와 평등을 가치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국가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체제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친구와 국정을 결정해왔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뜻을 전하고 권력의 남용을 감시 견제 해야 하는 국회는 이를 묵인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 씨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이전에 언론 보도에서 보았던 사진과는 달리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최 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각종 특혜 비리에 연루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며 옹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 씨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과거 힘들었을 때 알게 된 인연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논란이 커지자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외롭고 슬픈 대통령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혐의에 대해 변호하는 것은 모든 이의 권리다. 최 씨나 이경재 변호사가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적인 절차나 증거가 아니라 ‘어린 나이’를 운운하고, ‘과거 힘들었을 때’를 강조하며 사람들의 온정에 기대려는 행동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두 번째 사과문에서 박 대통령의 ‘이러려고 대통령됐나 자괴감 들어’라는 표현은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다.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만이 이게 나라냐고 묻는 질문에 답하는 길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판결문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


행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2차 집회에서는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집회가 시작되기 전 오후 2시, 중고생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했단다. 기사 사진 속 학생은 ‘시험이 대수냐! 나라가 미쳤다’라는 글귀를 적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라가 미쳤다. 미쳐버린 국가를 심폐소생하기 위해 모두가 광화문에 모였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진실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괴감을 느낄 때가 아니라, 자기반성을 할 때다.


이빛나씨는 청년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