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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구조조정’ 하라 (이은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25
조회
279

이은주/ 청년 칼럼니스트


1997년의 겨울이었다. 매일 아침 일을 나가 저녁에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회사를 하루걸러 하루 나가기 시작하더니 점차 집에서 쉬는 날이 잦아졌다. 유명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던 당시, 아직 알파벳도 몰랐을 시절의 나는 ‘IMF 사태’를 이렇게 기억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실직의 위기를 겨우 피하는 대신 몇 가지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선 정규직 명함을 반납했다. 아버지의 책상은 원래 다니던 회사의 ‘하청업체’로 옮겨졌다. 그마저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아버지는 또 다른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IMF 사태 이후 약 20년 만에, 당시의 칼바람이 다시 불어오고 있다. 이른바 ‘5대 구조조정’(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이라고 불리는 부실기업 중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건 조선업계다. 현대중공업은 전체 직원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약 3000명 안팎이지만, 사내하청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8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감축이다. 언제 내 목이 잘릴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칼 날 앞에, 임시로 고용된 하청업체·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대량 해고의 직격탄을 맞는다.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구호 아래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며 지나치게 친기업 정책으로 짜여졌다. 구조조정의 경우에도, 노동자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경영진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오로지 ‘경제적 효율성’만을 앞세우는 한국의 구조조정은 지난 IMF 사태처럼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의 피해를 떠안게 하고,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도록 사회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자본의 논리로 구성원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는 점에서,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은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것과도 닮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단과대학이나 학과가 실종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대학 구조조정’, 바로 학과통폐합 전쟁이다.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더 이상 순수학문과 인문학, 예술은 대학의 돈벌이(취업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은 경영학이나 영어, 컴퓨터공학 등 취업에 유리한 학과들만 입맛대로 골라 ‘글로벌’, ‘융합’, ‘인재’ 같은 식의 그럴 듯한 말들로 꾸며 학과를 ‘기형적’으로 결합시켜버린다. (실제로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법학과 경제학, 무역학, 행정학 등을 하나로 합쳐 ‘글로벌법정경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을 탄생시켰고, 그 때문에 사회과학대학에 있는 나머지 학과는 없어질 뻔하였다.)


20160518web01.jpg사진 출처 - 뉴스1


기업과 대학의 구조조정이 ‘닮은 꼴’인 이유는 또 있다. 대학 구조조정도 기업의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방식이 대체로 일방적이고 수직적으로 이루어진다.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대학생들과 대량해고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아무리 피켓 시위를 해도 결정권을 가진 윗사람이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이들에게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이다. 학과가 없어진 학생들은 한순간에 소속이 사라지고 전공과목의 수강권리도 박탈당하는 상태가 된다. 마찬가지로, 돌아갈 회사가 없어진 해고 노동자들은 턱없이 부족한 퇴직금으로 앞으로의 밥벌이를 걱정해야 한다. 회사는 뒷날의 책임을 오로지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의 구조조정 사태들이 보여주고 있는 민낯이다.


안전장치가 없는 채로 한국 사회는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의 마수는 대학생뿐만이 아니라 예비 대학생들에게도 뻗칠 수 있다. 전국 21개 대학이 정부의 ‘프라임 사업’에 따라 이공계열 위주의 학과개편을 실시하면서 문과계열의 입학정원을 4000명 이상 감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문과계열의 청소년들에게는 사실상 벌써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된 셈이다.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구조조정이 없을 것 같은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도 구조조정의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 등 에너지공기업은 부실한 실적을 이유로 실제로 그 대상이 되었다. 또한 구조조정은 더 이상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쉬운 해고가 가능한 나라’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구조조정의 주인공이다.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안전지대’란 없다는 것이다. 이제 구조조정은 일부 기업과 대학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논의해야 할 논란거리다.


바야흐로 ‘구조조정’ 권하는 사회다. 선택받은 소수만 살아남고, 다수는 사회구조 하위층에 머무른다는 ‘20 대 80 사회’는 더욱 고착화될 뿐이다. 사회적 약자나 취약계층에게 최소한의 금전적 지원은 물론 재취업을 도울 수 있는 훈련 및 자활제도와 같은 ‘사회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IMF 때 아버지는 해고의 낭떠러지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썩은 동아줄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잘리면 발 디딜 곳도 없을 것 같은 공포, 새 삶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은 20년 전에도, 현재도 노동자들이 뚜렷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20년 전과 지금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기시감만은 아닐 것이다. 뚜렷한 대안 없이 경제적 효율성만을 외치며 약자를 마구 잘라내버리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이제는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선택받지 못한 자들도 살아갈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는 공동체를 위해, 한국 사회를 ‘구조조정’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은주씨는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6년 5월 1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