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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권고사직을 당한 P에게 (어느 청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14
조회
310

어느 청춘


P, 안녕. 고향에 내려가니 어때. 서울보다 공기도 맑고 사람도 붐비지 않지? 회사를 다니면서 고향 지점에 발령 났으면 좋겠다고 한 네 얘기가 생각나. 그만큼 가고 싶어했던 고향인데. 회사를 그만 두고 밟는 고향 땅은 차가웠겠지. 네가 그토록 얻고 싶었던 정규직 자리를 수습기간 중 잃게 됐으니. 회사를 그만둔 후 어떻게 부모님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났을까. 정규직이 되면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효도도 해야겠다 생각했을 텐데. 부모님께 열심히 회사 다니고 있다며 안부 전화를 드렸을 텐데. 부모님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매일 과중한 노동으로 고생은 다 하고, 위에서 주는 구박도 다 받고, 그런 상황에서도 참고 견뎠을 너를 떠올리셨을 테니까.


남들보다 조금 튀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금 더 실수했다는 이유로 회사는 너를 얼마 전 퇴출시켰어. 회사와 맞지 않는다며 네 사소한 잘못들을 ‘경위서’라는 이름으로 객관화해 포장시켜서. 너는 내게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고 고백했지. 네가 마지막으로 회사에 나온 날, 상사는 “다른 회사가 너에 대한 평판 조회를 하면 괜찮은 직원이었다고 말해주겠다”고 했다며. 회사는 네가 어느 직장을 가든 네가 사회 부적응자라는 것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거라는 두려움을 심어줬어. 밥그릇을 빼앗은 것 이상으로 네 인생에 어둠을 드리웠어.


53136_127986_3318.jpg사진 출처 - 미디어스


나는 사실 네가 왜 회사를 나왔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 너는 같은 잘못에도 더 큰 지적을 받았어. 다른 직원이 하면 웃어넘길 행동이지만 네가 하면 이상한 행동이 돼버렸지. 100번 양보해 네가 ‘이상한’ 사람이라 해도, 그곳이 괜찮은 회사였다면, 자기 자식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얼러도 보고 혼도 내보고 노력을 해봤을 거야. 또 이 나라의 법이 수습사원에 대한 보호를 더 철저히 해주는 것이었다면, 너는 경위서 몇 장만으로 네 이름에 빨간 줄을 긋지 않아도 됐겠지.


너는 앞으로 수습사원과 같은 약자가 함부로 잘리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어. 그 길이 정치든, 언론이든, 사회단체든 어딘지는 상관이 없다고 했지. 너같이 나약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 갈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당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줘. 그리고 나도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게. 그때까지 너 자신에 대한 사랑을 놓지 말아줘. 네가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우리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들은 잘 알고 있으니까, 우리를 믿어.


이 글은 2016년 3월 2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