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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물을 닦아줄 정책 (전세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12
조회
355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① 39만 4천 원 ② 22만 8140원 ③ 38만 원. 앞의 금액들은 무엇일까. ①의 39만 4천 원은 대학생들의 월평균 생활비다. ②는 월평균 드는 대학생들의 취업 비용을 의미한다. ③의 38만 원은 아르바이트로 대학생들이 벌어들이는 월평균 수입이다. 39만 4천원이 생활비로 필요한데, 실제 버는 돈은 38만 원에 불과하다. 그러니 평균적으로 1만 4천 원이 마이너스가 되는 셈이다. 거기다 취업 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청년들 통장의 마이너스는 더 증가한다. 문제는 이 상황을 청년들 스스로가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고통은 청년들과 그 부모들이 지고 있다.


현재 서울시와 성남시에서는 청년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당에 대한 논의가 나왔지만, 반대가 극심한 상황이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흔히 니트족을 심사해서 최대 6개월까지 월 평균 50만 원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성남시는 성남시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청년에게 분기마다 25만 원씩, 연 100만 원을 수당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청년수당’이 비효율적인 예산 사용을 하는 정책이며, 청년실업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단기적 대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일부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며 ‘악마’나 ‘바이러스’와 같은 원색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전체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치 않는 ‘무작위 비판’에 불과하다. 그동안 청년들이 심한 취업난을 겪었던 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청년수당이 존재해 왔다. 프랑스에서는 청년들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취지로 청년수당을 실시했다. 국민이 어려울 때 국가가 도와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18~26세 청년들에게 직업교육을 조건으로 월 57만 원의 현금수당을 제공했다. 독일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청년이라는 주체를 보호하고, 생산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취업 교육과 함께 수당을 제공한다. 경제문제를 전 국가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공공철학’이 기반이 된 정책이다. 이외에도 스웨덴, 호주 등에서 청년수당을 실시하고 있다. 청년수당을 실시했던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청년수당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재정난에 시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수당 실시 이후, 청년 실업률이 감소해 국가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청년수당이 ‘국고를 낭비한다’는 비판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실시한 청년취업지원사업은 모두 실패했다. 연간 2조 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작년 7월 정부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부처별 사업이 중복되어 비효율적인 정책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거기다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민이 없다보니 이직률이 높고, 구직 단념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그나마 성공 사례로 꼽는 청년취업패키지 조차도 1년간 구직 유지율이 20%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기존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정책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 이런 비효율적인 정책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야 말로 국고낭비다. 이에 비해 훨씬 더 적은 비용이 드는 청년수당을 국고낭비라며 실시를 반대하는 것은 진영논리에 따른 비판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image_readtop_2015_1076456_14472292462220416.jpg사진 출처 - 매일경제


경제체질 개선을 통해서 청년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장기적 정책으로써 경제체질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매월 높은 물가와 취업 비용을 감당하느라 하루하루가 고통인 청년들을 도와줄 단기적 대책 역시 필요하다. 경제학자 공병호는 『10년 후, 한국』에서 청년들의 사회진출 비용이 높고, 청년들이 그 비용을 계속해서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마련하고자 할 경우에는 전문성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즉, 청년들이 계속해서 높은 사회진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등에 매달릴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청년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단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청년수당이다.


이제 청년도 복지의 대상이다. 지금의 청년수당 논쟁을 보다보면, 작년에 유행했던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라는 말이 떠오르고는 한다. 복지정책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법’이다. 일을 하지 않는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주는 혜택이 국고낭비이거나, 장애인이나 노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하지 못하기에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는 이는 없다. 비록 근본적으로 불행함을 해결 못한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복지정책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매월 생활비와 취업 비용이 부족해 마음 졸이는 청년들이 많다. 취업 준비에 전념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도 있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힘든 청년들에게 청년수당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방법은 아닐까.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6년 3월 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