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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대학답게 (전세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06
조회
285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수업 시간에선 비판적 지성을 배우다가, 교양필수(취업관련) 과목에서는 기업에 대한 순종을 말해요.” 얼마 전 모교에 들렸을 때, 후배가 해준 말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진보성’을 내세워왔던 곳이다. 그런 학교도 정부의 구조개혁 평가를 거스르지 못했다. 대학 평가 이후, 학생들이 “잘못된 불의에 저항이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에 총장은 “수도권 변두리에 있는 학교가 교육부에 대항할 힘이 있겠냐”며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판적 지성과 정의를 가르쳐 왔던 학교는 대학 평가 이후 순종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과 통폐합이 시작이 됐고, 학교가 가지고 있었던 특성은 사라졌다.


학교의 모습은 변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배우는 내용이다. 철학, 문학 등의 과목들이 사라진 자리에 프레젠테이션 스킬, 엑셀 등의 과목이 자리를 매웠다. 현실적으로 대학 구조평가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2018년이면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선다. 8년 후인 2023년이면 고교 졸업생이 39만 명까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지금의 대학 정원을 56만 명을 조정해야 한다. 1980년대 교육조치,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 등의 정책으로 인해 별 다른 규제 없이 대학이 늘었다. 여러 해 동안 대학들의 자율 조정을 유도해왔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제 객관적 조정자가 필요하게 된 상황이 됐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개혁에 따른 대학 평가 방식은 실패작이다. 지금까지의 대학평가 방식은 정원감축에 대한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졸속적으로 개발한 평가지표로 300개가 넘는 대학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현재 구조개혁 평가의 방향으로는 대학들이 쉽게 손댈 수 있는 학과 구조조정이나 학사 관리 항목에 중점을 뒀다.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대학들은 무리한 학과 통폐합 한 등 급조된 정책을 쏟아냈다. 단기 비정년 전임교원을 많이 채용하고 전임교원확보율을 높여 좋은 평가를 받은 대학들도 있었다. 대학이 기업화가 되어 가치창출 대신에 수익창출이 대학의 목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데, 현재의 대학 평가는 오히려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551-04.jpg사진 출처 - 서울여대 학보 만평


또 다른 큰 문제는 서울 외 지역에 있는 대학들, 소위 ‘지방대학’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점이다. 이번 평가 만해도 하위 2개 등급에 속한 대학들이 대부분 지방대였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인구 1000여 명 정도의 소규모 대학이라고 할 지역에서 창출되는 경제적인 부는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할 정도지만 이러한 지방대학의 장점들을 현재 대학평가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약한 지방대학들이 정원감축과 재정 지원 제한을 받게 되면 자연히 학교 운영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다음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을 수가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대학평가 이전에 대학이 어떤 교육을 맡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을 줄인다는 단순한 논리로 대학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영국이나 미국은 ‘학문의 상아탑’ 역할을 강조하고, 그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은 산업과의 연계를 더 강조하는 실용적 경향이 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대학이 맡을 교육에 대한 철학이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면 그에 맞는 정책을 펼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학이 맡는 교육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정책을 바꾸고, 그때마다 졸속적으로 만든 대학평가로 학생 수 줄이기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의 파우스트 총장은 “대학의 본질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가르침, 오래된 유산을 전달하려는 가르침, 미래를 설계하는 가르침”에 있다고 했다. 대학은 인생을 만들어가고,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맡을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