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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박제 그리고 전시 (오민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58
조회
301

오민석/ 청년 칼럼니스트


‘세계사 속 혁명’이라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왜 서양의 혁명만 세계사 속 혁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수업의 거의 90%가 서양의 혁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창 <파농>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서구가 만든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의문은 커져갔다.


대학 강의뿐인가?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혁명은 서양의 것이었고, 그 외의 혁명을 본 기억이 없다. 왜 서양이 아닌 곳의 혁명은, 이를테면 <파농>에 나오는 알제리 혁명은, 또 수많은 독립전쟁은 나오지 않는 걸까? 왜 서양의 혁명만 혁명으로서 우리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것일까?


서양의 혁명만 ‘혁명’으로 취급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그대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것이 우리에게 내면화된 것이다. 서양의 혁명만을 혁명으로 박제하고 그것을 전시함으로써 그 외 것을 테러로 만들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일 때가 많다. 항상 우리에게 혁명은 서양의 것이었고 제 3세계에서 어떤 민족이, 어떤 나라가 무슨 혁명을 일으켰는지는 알지 못한다.


서양의 합리적인 시민들은 혁명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혁명의 주체가 되면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객체가 되었다. 이들은 곧 식민지 시장을 개척했고 독립하겠다는 나라들을 탄압했다. 혁명의 국가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혁명의 진압과정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베트남에서 3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들의 저항만 혁명이었고 저들의 저항은 테러이고 진압해야하는 것이었다.


20120905202251462.jpg알제리 독립혁명
사진 출처 - 인터파크


‘혁명의 박제’는 서양 이외 다른 국가들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더 이상 미국은 초기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혁명을 서술하고 역사화하고 보물처럼 숨겨두느라 그 정신과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일부는 그렇게 혁명이 빛을 잃기를 바랐다. 혁명정신은 이제 위험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혁명정신을 탐구하는 것보다 독립혁명 당시의 정신은 되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독립혁명을 촉발시켰던 중요한 문건인 <상식>에서 당대의 지식인 토머스 페인은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이고 이러한 평등을 깨 부시는 것을 빈부차별’이라고 말했다. 그에 준하는 차별이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신하처럼 대하는 차별이기 때문에 거기에 저항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빈부차별을 가장 나쁜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 투쟁으로 만든 국가에서 호위 호식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뼈아픈 소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혁명의 정신을 박제시키지 않고 이어가려고 몇몇 리버럴한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혁명정신 발굴은 어디까지나 국내적인 것이다. 그들 역시 서구의 혁명만 혁명이라는 제국주의적 사고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박제는 깨부술지 모르지만 그것만을 혁명이요 하고 ‘전시함’으로써 여전히 다른 모든 것들을 테러의 위치로 규정한다. 사르트르 등을 제외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들이 알제리 독립전쟁 때 냉담했는가.


그들뿐 아니다. 우리도 그들의 사고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웃나라의 살아 있는 혁명을 접하지 못하고 언제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하는 나라들의 혁명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게 마치 우리 것인 줄 안다. 그들이 용인하는 몇 가지의 투쟁만 겨우 인권운동에 반열에 오른다. 제도 밖에서 흑인해방을 부르짖었던 말컴 엑스보다 제도 안에서 조금 덜 급진적인 주장들을 펼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훨씬 더 많이 기억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알제리 독립투사 파농은 덜 기억될 뿐더러 ‘테러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했다. 100만 명을 희생시킨 프랑스 군인들은 이렇게 불리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교과서 밖에서 혁명을 찾아야한다. 서양의 혁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박제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수많은 장소에서 일어났던 혁명도 마찬가지다. 이는 굉장히 주체적인 일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교과서를 볼 것이고(지루해서 그것마저 안 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죽은 것들에 매달릴 것이다. 결국 나도 강의실로 돌아왔고 그 수업을 또 들으며 학점을 위해 하나라도 더 외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강의실에 편안히 앉아 서양의 박제된 그리고 전시된 혁명을 들을 때, 혁명이 되지 못한 그 많은 투쟁들이 조용히 내는 울음소리에 마음 한 구석에서 콕콕 이상한 소리가 난다.


오민석씨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1월 1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