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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 엄마가 기숙사 다시 들어가래요 (조예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48
조회
467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쌤, 엄마가 기숙사 다시 들어가래요.”


우리 반 여학생 하나가 청소 시간에 슬쩍 와서 말한다. 기숙사 생활이 힘들다며 기숙사를 나와 편도 40km 거리의 대중교통 통학을 선택한 아이였다. 농담으로 집에서 불효(?)하지 말고 효도하라고 몇 마디 던졌다.


우리 학교는 98%의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다. 소위 ‘특목고’라고 하면 아주아주 똑똑한 학생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특목고에도 계급(?)이 있다. 우리 학교는 성실한 학생이 주로 온다. 성적은 조금 떨어지지만, 기숙사 생활을 버티고 대학 입시의 성공을 위해 3년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아이들이 많다. 나중에 커서 사장님의 말에도 순종할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많은 인문계 고등학교가 그렇겠지만, 학교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이다. 대입에서 수시가 강화되면서 학교생활은 더욱 중요해졌다. 9등급으로 나눠지는 교과 성적뿐만이 아니다. 수시의 학생부 종합 전형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수많은 교내 대회와 동아리 봉사활동, 독서까지 학생들은 쉴 틈이 없다. 여기에 인성까지 갖추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착하고, 창의적인 인재로 기록되어야 한다. 학교는 언제 어디서 표범이 뛰쳐나올지 모르는 세렝게티이다.


게다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잠깐의 쉼을 위한 집으로의 귀환이 불가능하다. 4년 전 우리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학교 옆 작은 5층 건물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사는 줄 몰랐다. 적게는 10분, 많게는 5시간 거리의 집을 떠나 기숙사에 산다. 월 2회 의무 귀가를 제외하면 한 달에 20일 이상을 머문다. 하루 종일 정글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그들에게는 학교가 곧 집이다.


20170628web01.jpg체육대회
사진 출처 - 필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결심한 아이들은 기숙사가 있기 때문에 온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학교의 학부모님은 상당수가 맞벌이시다. 부모들은 회사에서 야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한다. 야근으로 돌볼 수 없는 아이의 삶은 학교에 맡겨진다.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아이들을 맡아 밥 먹이고 재우는 공간, 그곳이 학교다. 요즘에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가 인기가 많아 기숙사 신축을 하는 학교가 늘어난다고 한다. 학교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보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학교가 싫었다. 고3 때에는 하루에 한 번씩 자퇴를 꿈꾸었다. 실행은 못했고, 야간자율학습(야자)를 꼬박꼬박했으며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다. 하지만 난 학교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인지 너무 성실한 우리 아이들을 볼 때 가끔 울컥한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나중에 우리나라 어디선가 맡은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노동할 아이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내 탓’을 하며 눈물 흘릴 아이들, 이래도 괜찮을까?


의식적으로 말한다. 괜찮다고. 지금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안 해도 되고 못해도 된다고. 부모님께 말한다. 안아주고 격려해주시라고. 집에서 멍 때릴 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잠깐의 휴식을 허락하라고. 꿈꾼다. 저녁에는, 휴일에는 집에 좀 가고, 놀고 쉬자고.


 

조에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이 글은 2017년 6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