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박서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03
조회
402

박서현/ 청년 칼럼니스트


돌이켜 보면 내 정치적 자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되었다. 우리 반의 실세 권 아무개가 “너 그 머리 끈 이상하다”라며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을 때였다. 보통 친구였다면 “난 좋은데?”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 같은 것이었다.


중학교 진학 이후 더 많은 부조리함을 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던 잔인한 학교폭력, 친구들끼리의 눈치싸움, 만만한 선생님을 조롱하는 학생들.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차별... 나는 많은 일들이 너무나 부당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변명하자면, 나는 내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그저 그대로 끝나버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이제서야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사회 활동은 가능한 참여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는 대대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 곳곳에는 대자보가 붙었고, 나도 시위에 참여했다. 학교 구성원의 격렬한 반대 탓에 학과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듬해 결국 소수 과는 통폐합되었다.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간절한 바람과 달리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용돈을 털어 후원했던 위안부 소녀상도 아직 건립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여중생 시절 조그만 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약자들이 강자에 대항하여 승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그 때의 나로.


10월 29일 광화문 시위에 참여했을 때 역시 그랬다. 입으로는 하야하라, 퇴진하라를 외치고 있었지만, 내심 무거운 현실은 꿈쩍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시위 규모는 점차 커졌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이후 분명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시위에 참가한 적 없는 친구가 시위에 동행했고,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겼던 주변인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화제로 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능할까. 희망의 싹이 트는 걸까.


IE002046496_PHT.jpg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다면 이는 내 생애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 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대통령 심판 그 이상이다. 100만 명이 참여한 사회적 저항이 성공하는 경험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성공한 시위의 경험은 이제 시민운동이 사회를 직접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 대학생들이 학교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 중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대중에게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패한 권력자에게는 부정은 결국 처벌받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덧씌워질 것이다. 100만 명의 시민이 시위 경험을 공유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100만 시민에게 시위의 결과가 성공으로 각인되기 위해서는 그 결과가 다른 형태가 아닌 시민들이 말하는 그대로, 하야 혹은 퇴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권한 이양,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같은 해법이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실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그저 복잡한 셈법의 정치적 타협으로 비칠 뿐이다. 권한을 일부 내려놓은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직에 있는 모습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고작 몇 주 봉사활동 처분만 받은 채 끝나버린 결과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번 주 주말도 시위에 나선다. 더 큰 변화의 도화선이 되기를, 보다 정의를 목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조금 더 커진 희망을 갖고 “퇴진”, “하야”를 외칠 것이다.


박서현씨는 노동과 정치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3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