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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담>과 ‘티켓테러’ (박꽃)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01
조회
374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은 대중들에게는 아직 개봉조차 하지 않은 낯선 작품이지만, 독립영화 매니아와 일부 관객층 사이에서는 꽤 입소문을 탄 영화다. 올 봄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대상을 탔고 뒤이은 6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표가 동났다. 이 영화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동성애물, 그중에서도 레즈비언의 연애를 아주 사실감 있게 다뤄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식 개봉을 앞둔 요즘은 뭇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홍보 목적의 유료 시사회를 진행하는 중이다.

20161116web01.jpg<연애담>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무비스트


이 영화에 훼방꾼이 등장했다. 유료 시사회 좌석을 대거 예약한 뒤 상영 직전에 취소를 해버리는 누군가다. 지난 12일 토요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대화(GV)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던 <연애담>은 영화 시작 직전 32석이 일괄 취소되는 ‘사건’을 겪었다. 해당 극장의 좌석 수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두 자리를 포함해 98석이다. 1/3에 해당하는 자리가 누군가에 의해 미리 선점됐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구매 할 여유도 없을 만큼 촉박한 시간만 남겨두고 돌연 전부 취소 된 것이다. 영화 배급사 인디플러그 관계자는 “극장 측에 확인한 결과 해당 취소는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일명 ‘티켓테러’다. 물론 영화계에 아예 없던 일은 아니다. <변호인>(2013)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런 주장은 명확한 근거 없이 떠도는 인터넷 루머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부터는 거의 대부분 수그러들었다. 물론 사람들은 당시에도 그런 논란이 불거진 원인만큼은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영화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만큼 그에 대한 정치적 호오에 따라 반응이 갈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이 ‘티켓테러’를 정당화 할 빌미는 못 되었지만, 어쨌든 그런 행동의 동기만큼은 충분히 납득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인간의 정치적 호오는 합리의 영역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1116web02.jpg사진 출처 - <연애담>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라온 이현주 감독의 호소문


<연애담>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성 정체성의 영역에서 논의 될 만한 작품이다. 정치는 호오를 따질 수 있지만 누군가의 성 정체성은 타인이 함부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한 인간이 타고난, 바꿀 수 없는 어떤 조건이기 때문이다. <연애담>은 그런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두 여자의 연애를 담담한 화법으로 그려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티켓테러’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행위의 일환이다. 그것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말이다.


바꿀 수 없는 누군가의 어떤 조건을 ‘반대’하거나, 차별하거나, 공동체와 격리시키려고 하는 모든 행위를 우리 사회는 혐오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내놓기 쉽지 않은 레즈비언의 사랑을 소재로 정식 개봉까지 하게 된 <연애담>은 동성을 좋아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기 드물게 자신, 혹은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다뤄준 작품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어 한 예비 관객의 마음에 찬물을 뿌린 ‘티켓테러’도, 우리 공동체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혐오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