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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개와 돼지, 그리고 하청인간 (지영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49
조회
319

지영의/ 청년 칼럼니스트


“민중은 개·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한 고위급 공무원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아마 그는 억울할 것이다. 이미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회에 만연한 현실을 말했는데 얼마나 억울할까. 그는 자신의 발언이 왜 부적절한지조차 모를 것이다. 그 자신이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소위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집단이 민중을 개돼지 취급한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인가. 그의 말은 인권이 배제된 자본주의 사회가 감추고 있던 속살을 제대로 보여줬다. ‘인간’을 위해서는 턱없이 형식적인 제도의 인권과 정치인의 혀끝에만 존재하는 평등한 사회. 국민을 위한 제도가 비인간적이며, 국민의 계층이 나뉘고 공고화되고 있음은 우리나라의 노동자가 처한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 청년이 홀로 안전문을 수리하던 중 지하철에 치여 온몸이 바스러졌고, 곧이어 숨을 거두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 일했지만, 정작 위험의 순간 그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숨을 거둔 그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이었다. 이 어린 청년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또 한 명이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매일을 에어컨 실외기 수리를 위해 낡은 건물의 난간들을 옮겨 다녔다. 낡은 선반은 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고, 안전장비 하나 걸치지 못한 그는 맨몸으로 낡은 선반과 함께 추락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하청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죽음 앞에, 이들의 ‘고용주’가 내세운 말 역시 한결같았다. 바로 ‘안전규칙 미준수’였다. 그들은 이 말 한마디로 죽음의 원인과 책임을 모두 고인에게 전가해버렸다. 하청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과 시스템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없는 업무 강도, 그럼에도 열악한 임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드는 책임 전가식 하청 계약 등은 그들의 입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다. 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그러나 이들에게 일자리와 임금은 생계, 그 자체이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기에 물러설 수가 없다. 늘어나는 하청 노동 속에서 ‘인간안보’에 적색 신호가 켜진 지 오래지만, 국가도, 기업도,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하청노동자 비율은 2012년 37.7%에서 2013년 38.4%, 2014년 38.6%, 2015년 상반기 40.2%로 늘고 있다. 산재 발생 비율은 하청 노동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하청 노동자들은 점점 하나의 ‘계급’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청 노동자라는 계급이 가지는 특성은 안전 보장의 가장 밑바닥, 인권의 존재 의미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정한 존재들이 아닌, 우리 국민의 대다수다. 이런 사태가 계속해서 방치된다면, 생존의 기본 권리조차 주장하기 어려운 최악의 노동 환경은, 하청 노동만의 문제는 아니게 될 것이다.


20160905web01.jpg사진 출처 - pixabay.com


자본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방식은 이렇듯 비인간적이다.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는 대다수의 하청 노동자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매번 외치는 노동 처우 개선과 발전을 믿고 기다려서는 발전이 없다는 것이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는 공무원의 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이 아니라 개와 돼지를 관리하는 관리자에게, ‘인권’을 보장하라는 말이 통할 리가 있겠는가.


제도와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형식적인 노동자 보호법을 개선하고 실제 노동자의 현실 개선에 직결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하청의 불가피함을 해결할 수 없다면, 최소한 기업과 하청 노동자 사이에 깨트릴 수 없는 국가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 자본과 기업이 몇 푼의 돈을 아끼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켰다면, 그들 자체에게도 사회에서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규제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 노동문제의 해결은 국민의 삶의 질,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는 ‘인간안보’ 문제의 해결이다. 오늘 국민의 ‘인간안보’가 보장받지 못하는데, 내일을 위한 ‘국가의 안보’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노동자가 힘겹게 올라서야 했던 낡고 위태로운 발판은 그 개인의 앞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의 사각지대라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미 사회 전체가 불안전지대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인간 안보가 지켜지는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직시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죽음 앞에서 잠시 울컥하는 마음으로 잠시 혀끝에, 눈가에 반짝 스치는 탄식과 애도는 공염불이다. 정당한 약속과 진실한 이행이 없는 권력과 기업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용과 노동 사이에 연결된 하청의 고리를 끊어낼, 비수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민은 국가가 키우는 개도, 돼지도 아니며 결코 하청되어선 안 될 인권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영의씨는 KTV 국민방송에서 인턴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9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