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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 여의도, 농성의 중심 여의도 (김정웅)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46
조회
286

김정웅/ 청년 칼럼니스트



최근 여의도에 가야할 일이 많아졌다. 자주 가보기 전에 여의도라는 공간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있었다. 이 나라의 자본이 모이는 곳. 한국의 ‘맨해튼’. 고소득 전문직들이 오가는 성공한 자들의 땅. 처음 보았던 여의도의 인상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서너 번 더 다니다보니 특이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농성. 여의도의 높은 대형 빌딩들에서는 세 블록 정도 걷다보면 누군가 농성을 하는 광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농성의 종류는 다양하다. 뙤약볕 아래 피켓을 들고 망부석처럼 서 있는 1인 시위, 큰 천막을 설치하곤 시끄러운 음악을 트는 천막 시위, 확성기를 들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궐기 시위……. 종류만큼이나 이유도 다양하다. 정당치 못하게 주주의 권리를 부정당했다거나 고객에 대한 거대 보험사의 횡포, 노동자 권익 침해 등 보다보면 우리 사회 부당한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가싶어 깜짝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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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정이 궁금하긴 했지만 문제에 도움도 될 수 없는 삼자 입장이라 그 분들께 자세한 내용을 여쭈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분들의 현수막과 피켓의 내용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해를 받고 난 뒤 제도권 안에서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러나 거대 기업의 유·무형의 실력 행사 앞에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런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는 것. 그리고 해결이 될 때까지 농성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

아마 그들은 문제가 언론을 거쳐 공론화되는 방식의 해결을 바라고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여의도의 농성들 중 하나가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걸 본 적이 없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흔해져버린 농성의 풍경. 매일 그것을 접하는 여의도의 직장인들은 흘깃 쳐다보지도 않는다. 부당함에 대한 피해의 아우성이 흔해지자 보는 이들이 무감각해진다. 상설 전시처럼 되어버린 농성들에는 뉴스 가치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 사회의 서글픈 초상이다. 강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이 있는데, 오히려 힘없는 사람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지 못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밀려나 길거리 농성을 나선 약자들인데 시민과 언론의 관심마저 받지 못한다. 누구도 편들어주지 않는 공허한 농성의 외침은 점차 잦아들어간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투쟁은 서서히 스러져 갈 것이다. 사라지는 농성자들은 모두 응분의 보상을 받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여의도에서 돌아오는 길엔 국회가 보인다. 훌륭한 나라를 만들라고 국민들이 빌려준 권력이 이렇게나 가까운데, 그 근처 구석구석엔 그 국민들의 피맺힌 아우성이 빗발친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


김정웅씨는 사회와 정치의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