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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맨과 백남기 (남소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03
조회
474

남소연/ 청년 칼럼니스트


한 사내가 길 위에 서 있다. 무언가 담겨 있는 묵직한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쥔 채. 이 남자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탱크다. 한 대의 탱크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라는 천안문 앞의 긴 길을 따라, 족히 열대가 넘는 ‘탱크 무리’를 마주하고 있다. 탱크는 금세라도 사내를 짓밟을 수 있다는 듯 조금씩 앞으로 나선다. 탱크가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그는 악착같이 포신 쪽으로 몸을 옮긴다. 그렇게 사내는 물러서지 않고, 탱크를 막아선다. 그 사내는 ‘Tank Man(탱크 사나이)’이다.


사내가 막고자 한 것은 시민을 짓밟으려 한 군홧발이었다. 중국의 시민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중국의 민주화를 외쳤고, 무장한 군인과 탱크는 시민을 포위했다. 그렇게 광장은 피로 얼룩졌고, 여태껏 정확한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사망자만 천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괜한 억측이 아니다. 탱크를 막아선 사내의 행방 역시 전해지지 않는다. 이른바 천안문 사태다.


이날 탱크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영국의 사진작가 스튜어트 프랭클린(Stuart Franklin, 1965-)은 이렇게 회상한다. “인민군 탱크가 인파를 향해 달려오자 한 청년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탱크를 가로 막았다. 탱크가 청년을 피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청년도 오른쪽으로 틀고, 다시 탱크가 방향을 잡으면 청년도 용수철처럼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주시했다. 탱크가 무자비하게 청년을 깔아뭉개고 통과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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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당시 한 청년이 시민을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이


포위하러 온 탱크를 막아서고 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사진 출처 - 공무원신문


2015년 한국이다. 한 노인이 광화문 광장에 서 있다. 시민 각개의 외침이 광장에 모인 그날,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은 ‘폴리스 라인, 아름다운 질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라는 문구의 띠를 두른 채 차벽을 쳤다. 게 중 몇몇은 광장에 모인 사람을 향해 직사로 물대포를 쏘아댔고, 노인은 자신을 정조준한 물대포를 맞다 쓰러졌다. 농민 백남기 씨다.


의식조차 없는 그에게 더 조준할 것들이 남았는지, 차가운 말들이 날아와 꽂힌다. 한 여당 의원은 “선진국에선 총을 쏴 시민들이 죽어도 정당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언론에서는 “폭력난동과 평화시위도 분간 못하냐”고 되뇌어 말한다.


이제 폭력시위(불법)냐, 평화시위(합법)냐의 논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탱크맨과 농민 백남기 두 사내 모두 내 몫을 대신해 광장에 서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수많은 ‘나’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 주고, 수많은 ‘나’들의 자리를 채워 주었다. 조금이나마 나은 역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내 몫을 대신 치러주는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대신 터져 나온 희생들이 모여 4.19를 만들고, 5.18을 만들었을 게다. 따져보면 나의 공포와 두려움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무자비함은 시공간을 가른 채 존재해왔다. 어쩌면 항시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2의 탱크맨, 제2의 백남기 역시 시공간을 가른 채 존재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탱크맨과 농민 백남기는 곧 우리들의 또 다른 이름이자, 비어 있으니 앞으로 채워가야 할 이름이다.


밖이 소란스럽다. 탱크도 몰려오고, 최루액 섞인 물대포도 쏟아진다. 우리는 기꺼이 탱크를 막아설 수 있을 것인가. 기꺼이 물대포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겨진 우리의 도리는 분노와 저항이다. 나부터 차벽을 막아서자. 나부터 차벽을 두고 욕이라도 내뱉자.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그렇게.


남소연씨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느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5년 12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