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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와 낙인 (김시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9-27 11:45
조회
1274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박기영 교수가 과학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에 과학계가 들고 나섰다. 이 반대 여론은 일파만파 번져 급기야 박기영 교수가 SNS에 자진 사퇴의 변을 올리고 중도하차했다. 그런데 나는 그 글이 석연치 않았다. 바로 “11년 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습니다”라는 대목에서였다. ‘주홍글씨’라는 말을 박기영 교수가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은유적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인 것처럼 보여도 아무나 사용하면 안 되는 말이 주홍글씨라고 생각한다.


  ‘주홍글씨’는 흔히 알려진 의미로는 ‘낙인’이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유명한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서 유래한다.
여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은 간통죄로 ‘간통 (adultery)’을 상징하는 ‘A' 문장을 가슴에 달고 산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주홍글씨의 효과는 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녀를 분리시켜 그녀만의 세계에 고립시키는 마력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낙인을 당하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만 하는 헤스터 프린은 진실로 결백한 사람이다. 종교적 위선에 저항하는 소수자이자, 그 당시 남성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헤스터 프린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으며 어디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없었다. 오직 선행으로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하고픈 말은 정작 낙인찍힌 피해자들은 ‘나 낙인 찍혔소’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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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교수의 사퇴의 글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사진 출처 - 필자


 

  소설『주홍글씨』뿐만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낙인찍히기 쉬운 환경에 처한 ‘사회적 약자’가 많다. 낙인은 다수가 합리적 이유 없이 소수자를 억누른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성소수자들, 여성을 향한 ‘혐오 표현’도 결국 낙인찍는 행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의 힘에 의해 아무런 이유 없이 장기간 배제를 당한 피해자라면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박기영 교수가, 당신께서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내가 껄끄러웠던 이유는 진실로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기영 교수가 사회적 약자인가? 아니다. 12년 전 황우석 사태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낙인을 찍는 가해자 집단이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박기영 교수 임명을 비판한 연구 윤리를 추구하는 과학자 집단 또는 시민 단체들이 문제 집단이란 말인가?


  정작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피해자들은 이 말을 사용하기는커녕 이 사회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끽’ 소리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진실로 주홍글씨를 당하며 힘겹게 사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서글픈 마음에 울컥한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