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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민주시민의 사회, 특정인의 사회 (지영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51
조회
288

지영의/ 청년 칼럼니스트



얼마 전 미국의 영화배우 클로이 모레츠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여성 대통령으로!’라며 지지 발언을 하는 것을 보았다. 당당히 소신을 밝히는 그녀의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린 여자 연예인이 ‘저는 소신 있는 000정당의 000를 지지합니다.’라고 하면 당장에 삼촌들의 우상에서 끌려 내려와서 눈물의 석고대죄를 할 판국이 아닌가. 굳이 가정을 하지 않아도 정치적 소신발언으로 유명한 방송인 김제동에게는 늘 퇴출의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공공연히 정치적인 행위, 발언을 하고 다니는 것 에 대한 단죄다.

우리 사회에서는 공인이 정치적인 소신을 밝히면, 그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보다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이 껄끄러운, 개인이 공공연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특정의 것’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다. 토론장이나 선거철, 정치인 같은 특정 장소나 특정 시기, 특정 행위자를 벗어나면 ‘정치적’인 것은 단죄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인 문제를 일상적으로 이야기 하거나, 정치적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반적이지 않은, 유난스러운 것으로 보는 시선이 늘었다.

정치적인 것을 특정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우리나라 정치권력의 그릇된 행보와, 그에 대해 쌓인 불신이 한몫을 한다. 한국 정치권력의 부패를 목격하는 경험,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소통을 거절당하는 경험이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시민 모두의 권리가 아닌, 특정이 소유하는 것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는 정치적이라는 것에 대해, 정치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 그릇되고 억압적인 잣대를 키워나가고 있다. 정치가, 정치적인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성질'을 가지고 잘못된 억압을 만드는 것이, 만드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오랜 세월 그릇된 방향으로 뿌리박힌 정치적 억압이, 관행이 문제인 것인데 그 억압이나 그릇된 관행을 탓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인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인식은 문제가 많다. 정치가 낳은 그릇된 결과를 개선하는 것도 외면이 아닌,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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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ixabay.com



정치의 기본적 특성은 이해관계를 둘러싼 배분, 의사조정 과정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회체계는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 민주 사회를 살아가는 주권자라면 당연히 정치적이며, 정치적이어야 한다. 정치적이 되는 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개인에게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이 공공연히 씌워지는 순간 그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순수하게 호소하는 시위조차도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이미지와 엮이면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으로 배치되는 입장의 구도를, 선악의 구도로 치환하는 양상이 보인다. 그렇기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단체나 개인을 매장시키는 것이 손쉬운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결국 정치적이라는 비판에 내재하는 본질은,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름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으나 배척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 사회는 그 무엇보다도 정치적 관용이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다른 것’으로 규정하고, 다른 것이면 악으로 몰아간다. 소위 고도로 과장된 종북 몰이가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잔인하게 효과적일 수 있는 배경에도 정치적 다름에 선악의 구도를 씌워 ‘단죄’의 대상으로 보는 논리가 기능하고 있다. 빈번하게 ‘정치적 단죄’가 이루어지는 까닭에, 정치는 더 먼 것, 관심을 가지면 피곤해지는 것, 특정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분위기의, 의식의 개선이 시급하다.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적 관용과, 정치에 대한 거리감의 회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다름을 단죄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지하고, 비난이 아니라 소통을 위해 입을 열어야 한다. 보다 민주적인 사회를 위해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정치는 모두의 것, 모두가 말하는 것,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를 외면하거나, 멀리 있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유리되어 특정의 것이 되지 않도록, 정치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과 내가 정치적임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정치적이어야 함을. 이곳은 민주시민의 사회이지, 특정인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영의씨는 KTV 국민방송에서 인턴기자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