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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기만 (강은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35
조회
307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취업, 연애, 결혼 등 우리들이 이제까지 믿어온, 당연하고 평범한 삶과 점점 멀어지는 N포세대 대부분은 윗세대의 그늘을 갖고 있다. 지금 청년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혹은 그때는 못 배워서, 갖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자신들의 욕망을 자식들에게 강요한다. 그들은 요즘 세상에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 하면서도 여전히 차별을 둬 남들과 비교하며, 내 자식이 피라미드 상층부에 못 들면 인생 실패한 것 마냥 한탄한다. 결혼문제에서도 사랑보다 돈의 자리가 커져가고, 부모들끼리의 싸움에 지친 자녀들은 파혼하네 마네 하기가 일쑤다. 남들과 다른 면이 내 자식에게 있으면 개성으로 인정하기보다, 흉이라 생각하는 부모 때문에 떳떳하게 자기를 표현하지 못해 어둠을 가진 젊은이들도 꽤 많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언뜻 보면 따뜻하게 인생 찬가를 외치는 듯하지만, 마냥 밝은 세계만을 묘사하지 않는다. 실없는 웃음과 유머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관계의 이름을 빌린 폭력, 부모 자식 간의 뒤틀린 관계를 날것 그대로 들이민다. 모두 “널 사랑해서, 널 너무도 잘 알아서, 널 위한 일을 하는 것뿐이야."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엄마가 딸에게 갖는 지독한 집착은 오히려 딸에게 있어 트라우마가 돼버리고,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집중하느라 정작 자식들에게 사과하는 법을 몰라 죽을 때까지 화해도 못한다. 각자 자신의 이유로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다. 이들은 대개 공통적으로 성인이 된 자식을 여전히 자기 ‘소유’라 착각한다. 그 소유에서 몹쓸 ‘권력’이 생겨난다.


20160622web02.jpgtvn 드라마 - <디어 마이 프렌즈>
사진 출처 - tvn


괴물은 어떤 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밖으로 좀처럼 꺼내기 꺼려하는 부모 자식 간의 애증으로 얼룩진 권력과 폭력의 역사는 단순히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다르게 변주되어 우리 사회 깊숙이 넓게 침투해있다. “젊음을 돈으로 살 수 없으니, 젊은이를 헐값에 사들여” 소유하려 드는 열정 페이도 그렇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지향하는 회사 안에서도 그 강압적 권력구조가 그대로 재현된다. 항상 더 많이 가지고, 더 오래 겪어 본 기성세대의 고용주들이 자식 같은 청년들에게 “다 너 잘되라고, 너 경험 좀 하라고”라는 걱정 어린 충고와 함께 갑질을 한다. 아들 같고 딸 같다고 하며 불쾌한 손을 뻗고, 심지어 지나치게 사생활에까지 간섭한다. 이런 사회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유독 두드러지지 않는가?


외국 특히 유럽 청년들도 요즘 캥거루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관계 속 권력의 폭력성은 한국보다 덜하다 느껴진다. 일단 생존을 책임지는 경제권을 순전히 부모가 독점하고 있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크다. 혼자 아르바이트를 해도 임금 자체가 한국 청년들의 것 보다 더 높다. 시급으로 살 수 있는 식료품을 비교해보면 여기보다 더 풍족하고 질도 좋다. 월세 보증금이나 등록금 또한 더 싸다. 이러한 조건들은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 정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만이 풀 수 있는 곤란하고도 무거운 숙제를 청년정책이라는 이름하에 젊지만 힘은 없는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청년들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어도 그것이 앞서 말한 부모들의 착각처럼 소유와 권력에 취해 우리들을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 청년들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노력들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봄에서 비롯한 것들인지 묻고 싶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6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