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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집에서 살고 싶어요 (이빛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26
조회
342

이빛나/ 청년 칼럼니스트


“돈 모으기 왜 이렇게 어렵냐.” 친구가 자리에 쓰러지듯 카페 의자에 앉으며 말을 던졌다. 간만에 모인 우리는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A는 졸업한지 이제 1년이다.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며 돈을 모으고 있지만 원룸 보증금 마련은 멀었다. 일주일에 3일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생활비를 번다. 아끼고 아껴 200만 원 남짓을 모았지만, ‘살 만한 곳’은 보증금 300만 원부터 시작이다. ‘괜찮은 곳’은 500만 원은 줘야 한다. 친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전화해 힘들다고 말했다며 울먹였다. 월 20만 원짜리 고시원 생활은 한동안 계속 될 듯하다.


B는 7월이면 지금 사는 집의 계약이 만료된다. 슬슬 방을 알아봐야 하는데, 부동산에 방을 보러 다니는 것만큼 진 빠지는 일이 없다. 눈치를 보며 가격을 점점 올리는 부동산 아줌마를 쫓아다니다보면 눈은 높아지고 스스로는 작아진다. 기껏해야 5평도 안 되는 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고 실시간으로 방 구하는 앱을 들여다봐야 한다. 서울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가격이 떨어지지만, 북쪽 끝이건 서쪽 끝이건 지하철이 닿는 서울 안에는 있어야 한다. 취준생이니까. 취업 스터디도 학원도 도서관도 설명회도 모두 서울에서 열린다.


나 역시 집을 찾아 떠날 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삶의 질을 포기할 것인가, (부모님)등골브레이커가 될 것인가. 그 삶의 질이라는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다. 벌레나 곰팡이가 없고 물 잘 나오는 곳. 처음 집을 구할 때는 최대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싼 곳을 줄기차게 외쳤다. 보증금 100만 원에 관리비 포함 20만 원이라는 집은 정말 누울 수‘만’ 있는 크기였다. 순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본 독방이 떠올랐었다. 변기로 쓰는 구멍 대신 멀쩡한 화장실이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그 화장실도 집 밖 복도 끝에 있는 공용이긴 했지만. 키가 작아 다행이지 키 큰 사람은 발이 현관으로 나올 지경이었다. 참고로 나는 160cm가 소원인 사람이다. 결국 등골브레이커가 되기로 했다.


“아, 행복주택은 어떻게 됐어?” A가 물었다. 셋 다 떨어졌다.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2016년 행복주택 물량을 당초 14만 가구에서 15만 가구로 확대했다는데, 우리 셋의 주거와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1분기 신청을 앞두고 취준생도 행복주택 신청자격을 얻었다. 집다운 집에서 몇 년 동안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1분기 신청 결과, 최고 경쟁률은 서울 가좌지구로 평균 47.5: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분기 공급되는 4곳 지구 중 대학생과 졸업한 지 2년이 넘지 않은 졸업생에게 50%를 배치하는 ‘대학생 특화단지’는 가좌지구 한 곳 뿐이었다. 가좌지구의 50%는 해당 자치구 내의 대학 재학생과 졸업자에게 우선권이 돌아갔다.


우선 선발권을 얻지 못한 나는 행복주택의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47.5: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사회초년생·취준생·대학원생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행복주택이 유일하다. 가좌지구의 362세대에 들지 못한 1만 6천여 명은 또 각자 집을 찾아 헤매야 한다. 편히 두 발 뻗을 집이 절실한데도 신청 자격도 얻지 못한 청년들도 많다. 대학 졸업 후 2년이 지난 대학원생이나,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직장·재산이 없어도 신청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그렇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방 말고 집에서 살고 싶다.”는 B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집이 없다. 몸을 누이고 짐을 쌓아두는 방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1~2년 단위로 옮겨 다녀야 한다. 학교에도 직장에도 속하지 못한 우리는 먹고 자는 곳에도 속해있지 못하다. 자이언티(Zion.T)의 노래 ‘꺼내먹어요’의 가사처럼, 집(방)이라 부르는 곳이 있지만 늘 집이 그립다.


farmhouse-1400x1867.jpeg사진 출처 - magdeleine


이집트에는 ‘사자들의 도시’(City of deads)라는 곳이 있다. 역대 파라오의 무덤이 늘어선 역사 유적지가 아니다. 살 곳을 찾지 못한 도시 난민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소다. 사람들은 과거 귀족층이 묻혀있는 무덤과 무덤 사이 공간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죽은 자들이 시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사자(死者)들의 도시다. 집 없는 서울 사람들은 무덤 대신 도시 속으로 스며든다. 늘어선 건물들 사이사이의 좁은 틈새를 찾아 헤맨다. 어딘가 두 발을 딛고 삶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을 얻기 위해서. 물론 운이 좋으면 틈이 아닌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다. 정부에서 정해준 ‘행복’의 기준에 들어맞는다면 말이다.


이빛나씨는 청년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5월 1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