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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에게 진정한 봄을 (강은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32
조회
406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한 여자 연예인이 찍었던 화보의 컨셉이 논란이 됐다. 매춘여성, 가난한 집의 어린 딸, 지적장애여성 등 사회적 최약자층과, 무구한 소녀의 이미지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이유이다. 화보에 대한 비난에 더해 십대소녀와 성인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성희롱, 성폭력을 당한 경험들을 소셜미디어에 털어놓았다. 과거나 현재나 많은 소녀들이 검은손과 눈길에 당해야만 했다. 그녀들이 저항하고 맞서기 힘든 힘을 휘두르는 자들의 논리는 “예뻐서 예뻐해 주겠다는데, 뭐 잘못됐어?”였다. 이런 뻔뻔함으로 그들은 모욕과 수치를 그녀들에게 줬다. 나 또한 십대 때, 대낮의 길 한복판에서 성희롱을 당한 기억이 있다. 소녀들을 향한 성폭력은 문제 있거나 유별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이라면 혹은 약자였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당해본 경험이다.


나는 현재 성매매 피해를 입은 여성을 돕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진행하는 일 중 청소녀성매매예방 프로그램이 있는데, 말이 ‘예방’이지 현실은 잔인하다. 우리나라의 청소녀 성매매 최초 피해 연령은 평균 16세로, 가장 큰 계기는 “가출 후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또래 포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소년 성매매의 70%는 채팅과 친구의 소개로 이뤄진다. 이 배경에는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방송과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조건만남, 고소득 아르바이트를 가장한 사기처럼 돈만을 좇는 어른들이 만든 문화와 범죄가 있다. 정말 그녀들 스스로 원해서 가출을 한 걸까? 한창 보호받아야 될 소녀들을 가정 밖으로 쫓아낸 것은 누구일까? 길 잃은 그녀들을 “예쁘다.”라는 사탕발림으로 꼬드겨 몸과 성을 돈을 주고 사는 이는 누구인가? 그녀들보다 힘이 있고 돈이 있다는 이유로 유린하고 버리는 그들은 누구인가? 어린 그녀들을 나무라기에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들이 많지 않은가? 과연 소녀들을 손가락질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나쁜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록산 게이는 “우리는 강간에 관련된 것들을 지나치게 수용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라고 했다. 앞선 화보 문제도 그렇고, 소녀스런 의상을 입고 섹시하게 몸을 흔드는 여자 아이돌, 오디션 프로에서 성적인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부르는 어린 소녀, 판타지로 포장해 미성년자와 아저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등,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는 것들만으로도 셀 수 없다. 우린 너무 무디다. 여성, 그것도 어리고 저항할 힘이 없는 어린 소녀를 향한 성적판타지를 묵인하고 있다. 판타지란 말도 옳지 않다. 판타지란 마법사나 요정, 몬스터처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칭해야 한다.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다. 미디어에 묘사된 모습들을 모르고 동경하는 소녀들이 있고, 그녀들을 향한 부적절한 욕구가 있다. 청소년성매매는 결국 몸과 마음이 찢겨 갈 곳 없이 전전하는 소녀들이 늘어나는 사건이자 범죄이다.


20170215web01.jpg사진 출처 - pixabay


혹자는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성인 여성들뿐 아니라 소녀에 장애여성까지 그 피해층이 줄기는 커녕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현재 세계적 인신매매 규모는 2700만 명에 이른다. 무기, 마약 매매와 더불어 3대 국제범죄 산업이다. 그 중 소녀가 75%, 또 그 중 58%가 성착취의 대상이다. 인신매매의 1차적 원인은 성매매 남성들의 착취이다. 성매매가 마치 성폭력을 줄여주는 필요악처럼 말하는 이도 있지만 한국은 성매매 규모도, 성폭력 범죄도 최상위에 속한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적인 욕구를 수용할만한 것,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포장하는 언론이나 우리 사회를, 그것에 무딘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소녀들의 행실만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위기의 상황으로 그녀들을 내몰고, 헤어나올 수 없게 돈과 폭력으로 세뇌하는 사회 현실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여린 새싹 같은 소녀들이 봄을 피울 수 있도록 품어줄, 따뜻하고 넓은 들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7년 2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